검색
[통신원 모집 통지]|시작페지 설정
고위층동향당건설인사임면부패척결국내경제조선족집거지중앙정책사회인물문화교육과학기획멀티미디어조선뉴스 한국뉴스국제뉴스종합보도 지식·자료실 리론관점 스포츠 연예관광생활포토
·중국 국가당안국, "일본 중국침략 전범 서면 자백서 선집" 제…  ·제10회 중국동북아박람회 페막  ·향주오대교 208개 돈대 전부 완공, 공사 막바지건설단계 진입  ·서장 50년, 천년고성 라싸 새 면모 보여줘  ·중국인민해방군 국악단과 녀자의장대 모스크바에 모습 드러내(포토)  ·올해 최고의 UFO 화산서 포착돼   ·북경, 지속적인 폭우날씨 예상  ·세계에서 가장 키가 작은 남자는 병으로 사망, 향년 75세  ·팽려원, 유네스코 사무총장 보코바와 국제 녀자아동 및 부녀교육…  ·중국 국가당안국, "중국 침략 일본 전범 서면 자백서 선집" …  ·중국 국가당안국, "일본 중국 침략 전범 서면 자백서 선집" …  ·중국 국가당안국, "일본 중국 침략 전범 서면 자백서 선집" …  ·중국 국가당안국, "중국침략 일본 전범 서면 자백서 선집" 제…  ·천진항 폭발사고 사망자수 161명으로 증가  ·천진항 폭발사고 지점, 생태공원 건설하고 기념비 세울듯  ·팽려원, 유네스코 총간사를 접견  ·천진항 폭발사고 조난자 160명  ·각지 간부와 군중, 습근평 주석의 중요 연설 학습  ·원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장진동지 서거  ·"동북항일련군: 영웅모범부대방형진: 백산흑수간의 장렬한 사시   ·사진으로 보는 중국인민항일전쟁승리 및 세계반파쑈전쟁 승리 70…  ·승리일 열병 10대 다채로운 순간  ·항일전쟁승리 70주년 기념대회 습근평 등 출석  ·공중 국기호위방대 천안문광장 향해 날아  ·항일전쟁 70주년 기념대회- 오성붉은기 서서히 떠올라  ·재방송: 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쑈전쟁승리 70주년 기념대회  ·력사를 명기하고 평화를 수호하자—국제사회가 말하는 "9.3"열…  ·천안문광장 열병식 대형스크린 정식으로 가동  ·항전승리일 열병식과 국경 열병식의 다른점  ·영국녀왕 68년전 웨딩케이크 여전히 식용 가능,약 500파운드…  ·항전승리 70돐 기념대회 순서 공포  ·북경, 거리 곳곳마다 국기 걸고 "9.3"열병식 맞이  ·중국, 일본정부에 국민의 목소리 경청 희망  ·외교부:9.3행사 참석 외국 귀빈 변화 발생  ·열병식 어떻게 진행되나.. 11개국 1만2000명·신무기 70…  ·일본 주재 중국대사, 력사를 정시하고 미래 개척할것을 일본에 …  ·올해, 전국 홍수재해상황 왕년에 비해 완화  ·9월 3일 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쑈전쟁 승리 70주년 기념대회 …  ·2차대전승리성과는 국제법치로 유지해야  ·전국각지 항전승리 70주년 기념 활동 거행  ·동북에서 가장 눈부신 고속철도 명주, 심양남역 곧 사용에 투입  ·무원 황령, "가을수확물 말리기"로 항일전쟁승리 70주년 기념  ·성문의 증명: 전쟁과 평화  ·항일전쟁승리 70주년 맞아 상해 70쌍 커플 "승리의 키스" …  ·천진항폭발사고로 이미 158명 사망, 15명 실종  ·공산당과 국민당 항전 로전사,처음 열병식 동참  ·국제군사력사위원회 연례회의 최초로 중국에서 개최  ·중국 국가당안국, "중국침략 일본 전범 서면 자백서 선집" 제…  ·중국 국가당안국, "중국침략 일본 전범 서면 자백서 선집" 제…  ·중국 국가당안국 "중국 침략 일본 전범 서면 자백서 선집" 제… 

【기억】리연평, 연길에서 태여난 항일련군 군장

2015년 09월 07일 14:36【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기억】리연평, 연길에서 태여난 항일련군 군장

인민넷 종합: 사진에서 볼수 있다싶이 한면의 벽만 남은 이 건물이 바로 동북항일련군 제4군 군장 리연평의 생가이다. 연길시 해방로 동단 북쪽에 있는 량식창고 양조장부근이다. 문패번호는 325, 20세기 20년대에 지어졌으며 리연평의 아버지 리술의가 일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20여년간 살아왔다.

리씨네 후손인 양려진은 기자들을 인솔하여 이곳을 참관하게 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리씨네는 원래 연길 북산에 살고 있었고 후에 장병들이 북산에 대본영을 건설하자 백성들은 어쩔수 없이 이전했다. 리씨네는 분가하였고 리술의는 일가족을 데리고 이곳에 왔다. 해방로는 당시 녀신묘로(娘娘庙路)라고 불렀다. 일본군이 연길을 침점한후 29세의 리연평은 일본인의 화를 받기 싫어 1932년 1월 집을 떠나 녕안에 있는 큰형 리연록을 찾아갔으며 항일무장 구국군에 참가했다. 그는 막 부대에 도착하자마자 경박호 련환전에 참가하였다. 패잔병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리연평을 계책을 세워 불로 일본군을 공격하기로 했으며 드높은 큰 불에 수백명의 일제놈이 타죽었다. 같은 해 6월, 리연평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수녕 유격지대 지대장으로 임명되였다. 그는 령민하고 과감했으며 련전련승을 이루었다. 1933년 겨울에 그는 모스크바에 파견되여 동방대학에서 학습하였으며 2년후 졸업하고 다시 싸움터로 가게 되였다. 1936년 3월 리연평은 항일련군 제4군 군장으로 임명되였으며 명령을 받고 서정하였다.

서정은 항일련군 사상 가장 비장한 이야기이다. 일제에 겹겹히 포위된 항일련군은 집중하여 당중앙과의 련계의 통로를 열기 위해 한차례 림해설원의 장정을 시작하였다. 연도의 마을은 놈들에 의해 모두 불태워졌으며 부대는 입을것 먹을것이 없었다. 높고 높은 감시탑에서 매국노 놈들이 망원경으로 수시로 감시했으며 숲속에서 약간 불꽃이 보여도 토벌대들은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이처럼 간고한 상황에서 리연평은 병사를 거느리고 목숨을 걸고 싸웠다. 화천금광 광산경찰대를 습격하고 보청현 경찰국을 습격하여 드디어 주하와 오상간의 련계의 통로를 열어놓았다. 그후 적의 포위를 당해 매일마다 싸웠으며 량식이 끊킨데다 그는 또 중병에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투지는 꺾이지 않았다. 1938년 12월20일 주하 착초정자에서 숙영할때 리연평은 피습을 당해 35세의 나이로 희생되였으며 지금까지 그의 유골은 찾지 못했다.

양려진의 진술에 의하면 리연평은 항일대오에 참가한후 그의 집은 항일련군의 련락소, 교통소로 되였으며 항일련군을 지원하는 물자를 저장하는 거점이였다. 리씨네는 아주 큰 남새움을 팠는데 이곳에 항일련군의 물자를 저장했고 또한 오가는 인원들이 몸을 숨기는데 편리를 주었다.

1933년과 1934년 리연평은 비밀리에 두번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리연평의 아들 리만국이 회억한데 의하면 리연평은 방에서 안해에게 두수의 시를 남겼다고 한다. 그중 한수의 시에는 이렇게 씌여있다. “동지 섣달 랭수를 들이키고 한조각 얼음이 되며 놈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나는 죽어도 마음속의 원한을 풀수 없다.” 리만국의 어머니 리왕씨는 이 시를 한평생 흥얼거렸다고 한다.

리씨네 형제가 혁명에 참가한것은 모두 연길로부터 시작되였다. 리씨네 가족은 리연록, 리연평, 리상청(리연후), 리연귀, 리지(리연전) 등 여러명의 걸출한 인물을 배출해냈다.

래원: 인민넷 (편집: 김홍화)
  [본문 프린트]  [편집에게 편지쓰기]  [E-mail추천]
주의사항:
1. 중화인민공화국 해당 법률, 법규를 준수하고 온라인 도덕을 존중하며 일체 자신의 행위로 야기된 직접적 혹은 간접적 법률책임을 안아야 한다.
2. 인민넷은 필명과 메모를 관리할 모든 권한을 소유한다.
3. 귀하가 인민넷 메모장에 발표한 언론에 대하여 인민넷은 사이트내에서 전재 또는 인용할 권리가 있다.
4. 인민넷의 관리에 대하여 이의가 있을 경우 메모장 관리자나 인민일보사 네트워크쎈터에 반영할수 있다.
메모 남기기:

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