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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과 정열로 수놓은 무용인생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학부 최미선교수의 이야기 

2012년 12월 14일 09:56【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학부에서 본과생들과 연구생들에게 조선민족무용과 무용연구방법론 등 과목을 가르치고있는 최미선교수는 중국의 최고무용명문학부인 북경무용학원의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별로 해놓은 일도 없어 쑥스럽다고 하면서 극구 취재를 사양하는 최미선교수와의 인터뷰는 지인을 통해서야 어렵사리 이루어졌다.

최미선교수는 자신은 인간의 덕목을 그 어떤 기술보다 우위로 본다고 하면서 취재내내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 많은 비중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의 이러한 세계관은 스승이셨던 박용원선생님의 준절한 가르침과 갈라놓을수 없다.

1956년에 왕청현에서 출생한 최미선교수는 1972년 10월에 “10년 동란”후 첫 패로 연변예술학교 무용학부에 입학하여 무용인생의 스타트를 뗐다. 1975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뒤 4년간 화룡현문공단에서 무용배우로 활약하다가 모교로 돌아와 교편을 잡으면서 박용원선생님에게서 우리 민족 무용의 진수를 전수받기 시작했다.

“‘평생 중국조선족무용에 헌신하라’는 선생님의 준절한 타이름이 평생 저를 ‘괴롭히면서’ 제가 앞으로 나갈수 있는 동력이 되였습니다. 선생님의 제자를 자식처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씨와 성실성을 바탕으로 하는 철두철미한 장인정신이 바로 나의 무용인생의 버팀목이 되였습니다.”

최미선교수는 박용원선생님의 문하에서 조선족무용의 고유의 률동과 숨결을 탐구하는데 많은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였다. 성공의 초석은 언제나 땀과 노력으로 다져지는 법이다. 그의 성과는 단계별로 무용표현, 무용창작과 무용교수에서 낱낱이 구현된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초까지 최미선교수는 무용표현에서 유독 뛰여난 실력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1980년, 전국 제1회 무용콩클에서 표현 3등상을 수상하기 시작하여 1982년, 1983년에는 연변청년무용콩클에서 련속 2년간 표현 1등상을 수상하였으며 1990년에는 동북3성군분구 무용콩클에서 표현 1등상을 수상하였다. 이 시기 그는 일본, 미국, 한국 등 나라의 요청으로 조선족무용을 선보여 관중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최미선교수는 배움을 인생의 락으로 생각하고 배움의 고삐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1998년에 한국 세종대학에서 석사학위를, 2004년에 한국 명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동안 갈고 닦은 재질이 무용창작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1998년부터 시작된 무용창작은 2006년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였다. 이해부터 그는 1년에 평균 4, 5편의 무용작품을 쏟아냈다. 2006년 무용시 “천년아리랑”중의 “북춤”은 전국소수민족무용콩클에서 우수종목상을, 2009년, 무용 “희나리”는 전국 “제자”컵 무용콩클에서 표현 2등상과 창작 3등상을 수상하였으며 2009년 국경절에는 문화부의 초청으로 국경 60돐 “부흥의 길” 창작소조에 편입되여 국가문화부로부터 영예증서를 발급받았다. 2011년에는 30회 TV드라마 “장백산 아래 나의 집”에서 무용안무를 맡아 우리 무용의 아름다운 가락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최미선교수는 지금까지 300여명에 달하는 제자들을 양성하였는데 적지 않은 제자들이 대학과 문예단체들에서 두각을 내밀고있다. 그중 굵직굵직한 국가급상을 수차 수상한 남성군무 “서혼”을 창작한 연변가무단의 안무가 김희는 최미선교수의 수제자이기도 하다.

일찍 길림성 제8기 인대대표(1993년), 중국부녀 제7차 전국대표대회 부녀대표로 당선되고 현재 연변민간문예협회 부주석, 연변무형문화재산전문가소조 성원으로 활약하고있는 최미선교수는 무용을 자신의 분신으로 삼고 교수와 학술연구 및 창작에서 자신의 열성을 다하고있다.

래원: 연변일보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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