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발 중신넷소식: 남경대학살 국가 추도일 전야, 중경시 북배구 당안관은 부분 력사자료를 공개해 항일전쟁시기 일본이 중국 남경을 점령한후 중국에 대해 파쑈통치를 실시한 사실을 증거로 제출했다. 이중 일부 력사자료는 모두 처음 공개되는것이다.
1937년 12월 13일 일본침략군은 남경성벽을 뚫은후 중화문과 광화문으로 남경성을 진입했으며 장장 40여일간의 남경대학살을 시작했고 남경은 함락되였다. 이번에 공개된 력사자료중 한권의 일본 본토 잡지 《일본약진화보》의 1938년 2월호 표지에는 "남경함락 축하호"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적혀있었다. 이 화책은 일본동양문화협회에서 발행했으며 화면중에는 일본 동경시중심 상업거리의 풍경을 묘사했다. 길거리에는 채색기가 나붓기고 경축표어를 높이 걸었으며 인행도로에는 일본의 태양기와 군기를 걸어놓았는가 하면 독일파쑈와 이딸리아파쑈의 기발도 걸어놓았다. 그중 한 프랑카드에는 "남경함락 축"이라는 다섯글자가 씌여져있다.
1946년 2월 남경전범심판군사법정은 조사를 거쳐 일본군은 남경에서 6주동안의 대학살을 진행했으며 30만여명에 달하는 중국군민이 총살과 생매장을 당했다고 판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