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암살 계획에 참여했던 마지막 생존자인 독일의 에발트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가 사망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향년 90세.
폰 클라이스트의 안해인 군둘라 폰 클라이스트는 남편이 지난 8일(현지시간) 뮌헨의 자택에서 숨졌다고 12일 밝혔다.
폰 클라이스트는 1922년 7월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히틀러가 권력을 잡기전부터 나치의 독재자를 반대했으며 히틀러 집권이후 수차례 체포됐다.
폰 클라이스트는 나치에 대한 가족의 반대에도 1940년 독일군에 입대했으며 1943년 동부전선에서 부상했다.
부상으로 요양중이던 폰 클라이스트는 자신에게 접근한 클라우스 폰 스타우펜베르크 대령에게 히틀러 암살 계획을 듣고 참여하게 됐다.
폰 클라이스트는 히틀러에게 새로운 제복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고 폰 스타우펜베르크는 그에게 자살 폭탄 조끼를 입고 있다가 히틀러 옆에서 터뜨릴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암살 계획은 실패했다.
이후 폰 스타우펜베르크는 폰 클라이스트를 다시 찾아와 "7월 20일"계획으로 알려진 암살 계획에 참여하라고 제안했다.
7월 20일은 암살계획을 시도할 날이였다. 폰 클라이스트는 계획에서 히틀러를 만날때 폭발물이 있는 서류 가방을 운반할 중요한 역할을 맡을 예정이였지만 계획이 변경돼 폰 스타우펜베르크가 직접 폭발물을 설치하게 됐다.
이 계획 역시 성공하지 못했고 폰 스타우펜베르크와 폰 클라이스트의 아버지 등 수십명이 체포돼 처형됐다.
폰 클라이스트도 체포돼 오래동안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의 조사를 받고 나서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지만 알수 없는 리유로 풀려나 군으로 돌아갔다.
전쟁이후 폰 클라이스트는 출판사와 국방 관련 연구 단체 등을 설립하고 군사 관련 잡지를 발행했으며 1963년 "뮌헨 안보 회담"(Munich Security Conference)을 만들었다. 매년 열리는 이 회담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관련 문제에 관해 정통한 회의로 알려져 있다.
그는 "뮌헨 안보 회담"을 이끈 공로로 미국 국방부가 수여하는 상을 수상했고 독일과 프랑스 등으로부터도 훈장을 받았다.
래원: 인터넷흑룡강신문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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