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당봉상선생을 처음 만난것은 연길공항 대합실 로비에서다. 당봉상선생은 짙은 눈섭에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졌으며 70대임에도 불구하고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짙은 남색 롱패딩을 입었는데 앞가슴에 박힌 네모난 국기가 유난히 시선을 끌었다. 간단한 인사가 오고간후 우리는 연변축구협회의 차로 함께 주숙지까지 이동했다.
당봉상선생은 차창밖의 풍경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연길은 정말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변화가 크다고 감탄했다. 지금 북경에서 살고있는 선생은 이번에60년대 최우수진영에 뽑혀 “연변축구60년 최우수인물” 시상식 참석차로 40년만에 연길을 찾았다. 차안에서 기자가 60년대 최우수진영에 뽑힌 명단을 펼쳐보이자 그는 한참 보더니 "나는 당시 유일한 '소수민족'이였지요"라고 롱당조로 말했다.
1941년 7월 장춘시 한 로동자의 가정에서 태여난 당봉상은 어려서부터 축구를 사랑했으며 1958년 동북사범대학 체육학부에 입학해 길림성청년팀 주장으로 활약했다. 그의 뛰여난 속도와 신체소질, 출중한 대인방어는 당시 길림성팀 감독의 눈에 들었으며 이듬해 조선방문경기에서 훌륭한 표현으로 당당히 길림성팀에 입선했다. 당해 그는 또 국가청년팀에 선발되여 북경에 남을 기회가 생겼지만 홀로 북경에 남기가 싫어 길림성팀을 따라 연길로 왔다. 당시 길림성팀은 조선족선수로 구성되였으며 당봉상은 유일한 한족이였다. 때문에 그를 팀의 유일한 "소수민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5년의 전국우승에 대해 1964년 을급련맹전 2등(남경부대팀 1등)으로 다시 갑급에 복귀한 뒤 연변팀은 동계훈련에서 3종1대의 대운동량훈련을 진행, 지금처럼 과학적인 측정의기가 없는 상황에서 단지 훈련으로 튼튼한 체력기초를 닦아놓았다. 때문에 항주에서 진행된 경기에서 연변팀은 다른 팀들보다 한뼘 우인 체력을 뽐내고 한사람처럼 움직이는 전술배합을 구사함으로써 전국우승을 따낼수 있었다고 말한다. 당시 길림성팀은 우수한 신체소질과 충족한 체력을 바탕으로 다른 팀들에서 구사할수 없었던 “전공전수”(전면공격, 전면방어)의 전술을 사용하였는데 연변팀에 2꼴이상 넣은 팀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당년 연변팀의 풍격에 대해 당봉상은 “단순히 용맹, 완강 등 표현으로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한사람같이 움직이는 집체, 북방의 호방한 성격, 간결하고 실용적인 공격, 전면수비와 쾌속반격 등을 꼽았다.
1965년 전국갑급련맹전 1위, 전국운동회 4위라는 성적을 따낸후 정종섭, 허경수 등과 함께 국가팀에 입선된 당봉상은 그때로부터 북경에 남았다.
국가팀에서 문화대혁명을 맞아 훈련과 경기외에는 혁명을 열심히 하였단다. 1974년에 퇴역한 당봉상은 약 2년간 국가체육운동위원회가 소집한 전국적인 청년운동원집중훈련반에 교련원신분으로 참가한다. 그는 축구, 배구, 롱구 등 구류항목 훈련에 참가한 청년선수들의 훈련을 지도하는 한편 조사연구를 진행하여 훈련이 결속되자 국가체육위원회에 방대하고도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조사연구보고를 제출한다…
1980년부터 국가체육운동위원회(1998년부터 국가체육총국으로 개칭) 야구관리부에서 20여년간 부비서장, 비서장으로 있으면서 비올림픽항목들인 야구, 골프, 당구, 볼링 등 20여개 항목의 훈련과 경기를 총괄했다. 당봉상은 중국스포츠계에서 누구나 알아주는 전문가, 로간부(정처급)로서 2001년 퇴직하여서도 줄곧 스누커학원 코치 양성에 힘을 다하고 있다.
당봉상은 올해 연변장백산축구팀이 중국슈퍼리그에 진출했는데 거물급구단과 거물급선수들이 운집한 슈퍼리그에서 자격을 보존하기란 쉽지 않을것이라고 하면서 제한된 투자로 팀에 알맞는 전술과 그에 합당한 선수들을 리용하여 슈퍼리그 자격을 보존하는것을 전제로 좋은 성적을 따낼것을 기원하였다(김홍화).
왼쪽으로부터 연변축구계 원로 박만복, 당봉상, 김석주 |
래원: 인민넷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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