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8)
2016년 04월 28일 14:35【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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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라바람
어느 장난군이 남의 군모에다 몰래 자라 한마리를, 즉 “왕바” 한마리를 그린것이 발단이 되여 중대안에 갑자기 “자라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까닭없이 제 군모에 자라선물을 받은 피해자가 가만히 있을리 없다. 그는 례상왕래로 리자까지 듬뿍이 붙여서 두마리를 갚아주었다. 이것을 본 다른 군들도 다 손바닥이 근질근질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불과 며칠 안 가서 온 중대안에 세상에도 괴이한 자라바람이 휘몰아치게 되였는데 개중에는 저명한 만화가 장락평, 화군무도 무색할만한 걸작까지 나타났다. 즉 한명의 자라군관이 한 소대의 자라병사들을 앞에 세워놓고 “어깨총!” 구령을 부르는것이다.
내 군모에도 두개 반의 자라가 그려졌는데 그것은 정파란 작자가 도적질해 그리다가 내게 들켜서 쥐여박히는통에 다 그리지 못하여 “미완성의 명화”로 남은것이다.
일요일의 외출은 구속스러운 병영생활을 하는 군관학교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설명절이나 진배 없었다. 하여 개중에는 일요일이 갓 지난 월요일이나 화요일부터 벌써 다음 일요일을 고대고대 기다리는축들까지 있는 형편이였다.
매번 외출때마다 의전례 한차례씩 검사가 진행되는데 그것은—면도질은 했는가, 손톱은 깎았는가, 단추는 떨어진게 없는가 따위를 군관들이 하나하나 낱낱이 살펴보는것이다. 한데 이날 의외의 지장이 생겨서 우리는 또 한번 가슴이 달랑달랑하게들 되였다. 검사를 하던 직일관이 한 학생의 군모를 벗겨들고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놀라서
“아니, 이게 뭐야?!”
하고 소리를 지른것이다.
직일관이 지른 소리를 계기로 하여 전 중대 팔구명의 군관이(중대장과 지도원까지) 총동원된 일장의 검사선풍이 일어났다. 그 결과 거의 모든 사람의 군모에서 자라가 발견되였을뿐아니라 그 불후의 걸작—자라군관지휘하의 자라병사들까지 들추어냈다.
중대장은 전 중대 성원앞에서 부아통을 터뜨렸다.
“군인의 인격을 모욕해도 분수가 있지… 이건 본교의 면면한 혁명전통을 모독하는 행위다!”
이렇게 허두를 떼여놓고 한바탕 내리엮은 다음 중대장은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눈초리로 세개 소대를 차례로 훑어보고나서 어떠한 항변도 불허하는 어조로 명령하였다.
“선코를 뗀게 누구야? 썩 앞으로 나서!”
그러나 전 중대 100여명 죄인들중에서 감히 앞으로 한발자국 나서는 사람은 아무리 기다려도 없었다. 괴괴한 정적…
“없는가? 없다면 좋아. 금후 본 중대는 한달 동안 외출을 금지한다!”
보이지 않는 동요가 대오속을 맥랑처럼 물결쳐나갔다. 중대장이 놓은 그 한마디의 으름장은 우리들에게 비길데없이 큰 실망을 갖다 안겨주었다. 거리에 나가서 한잔 하기도 인젠 다 틀렸다. 배놀이도 다 틀리고 영화구경도 다 틀렸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러한 고비사위에 홀제 순도자 하나가 나타나서 앞으로 두어걸음 썩 나섰다. 150쌍의 눈길이 일시에 그에게로 쏠렸다. 한데 사람들을 놀라게 한것은 그가 전연 엉뚱한 사람 즉 강진세작은아씨였다는 사실이다. 그가 자라바람에 감염되지 않은 극소수 얌전이들중의 하나란것은 누구나 다 잘 아는터였다.
중대장은 잘 믿어지지 않는듯이 강진세를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한번 찬찬히 훑어보고나서 물었다.
“그대가 선코를 뗐단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비록 작기는 해도 똑똑하고 옹골찼다.
“흠…”
하고 중대장이 다시한번 강진세를 훑어보고나서 막 입을 열려던차에 불쑥 또 한 사람이 대렬밖에 나섰다.
“중대장께 보고드립니다! 선코는 제가 뗐습니다. 저군은 상관없습니다. 저군은 작은아씨라서 이런 장난은 못합니다!”
보아하니 진짜 “수악”이 자수를 하는 모양이였다.
중대장은 짐작이 가는 모양으로 노기가 금시로 푹 풀려서 강진세쪽으로 다시 얼굴을 돌리며
“그럼 어째서 안담을 해나섰지?”
하고 물었다.
“어차피 책임질 사람이 하나 나와야 하겠기에 그랬습니다. 외출이 금지되면—모두들 크게 락심합니다.”
중대장의 얼굴에 알릴듯말듯한 웃음이 스쳐지났다.
“그대는 그만 물러가도 좋아.”
순탄하게 이렇게 말한 다음 중대장은 다시 “수악”을 향하여 률기를 하고
“일후에 다시 이런 못된 장난을 하면 그때는 가차없어, 알았지? —좋아, 그럼 물러가.”
사면받은 “수악”은 표준동작으로 멋지게 경례를 붙이고 군화의 뒤꿈치를 딱 소리가 나게 부딪치며 뒤로 돌아서서 익살맞게 동급생들에게 혀바닥을 날름해보인 다음 기분 좋게 복대하였다. 이어 중대장이 중대 전원에게 물었다.
“다들 알았는가?”
중대장의 입에서 눈짓을 하자 직일관이 선뜻 한걸음 앞으로 나서서 외출을 선포하는데 해산하기전에 먼저 “본교의 면면한 혁명전통”을 가슴속에 아로새기기 위하여 교가를 부르라는것이였다. 하여 전 중대는 일제히 목청을 돋우어 씩씩하게 불렀다.—
노한 물결 팽배한데
붉은 기발 휘날린다
이는 혁명의 황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