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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정성을 민족교육에 바쳐가는 훌륭한 교원

--흑룡강성 녕안시조선족소학교 리창현교원의 이야기

2013년 03월 26일 15:34【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리창현교원

흑룡강성 녕안시조선족소학교에는 20여년을 하루와 같이 사랑과 정성을 당의 민족교육사업에 바쳐가는 훌륭한 인민교원이 있다. 그가 바로 금년에 48세인 리창현교원이다.

“애들이 좋아하는 교원이 진짜 좋은 교원이지요”

“애들이 좋아하는 교원이 진짜 좋은 교원이지요”이는 리창현교원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속심의 말이다.

리창현교원은 23년전인 1990년3월, 가정생활난으로 하여 고중도 졸업하지 못한체 우연한 기회에 흑룡강성 녕안시 모농촌소학교에 발을 붙이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그는 줄곧 10여년을 편벽한 시골학교에서 민영교원으로 담임사업을 해왔다. 그것도 로교원이 한국행을 떠나면서 기회가 차려진것이다.

어려서부터 그 누구의 감독이나 재촉이 필요없이 하는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다 보니 교육사업에 종사하는 그날부터 그는 모든 정성을 아이들에게 몰부어왔다.

그가 갓 교원사업에 참가했을 때다. 학교에서는 그한테 고급학급을 맡겼는데 일부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도 제대로 듣지 않고 함부로 장난질을 해왔다. 어떤 애들은 학습성적이 뒤떨어지면서 몇년씩 재학하다보니 덩치가 그와 거의 비슷했다. 그 애들은 가끔 눈을 흘기면서 어쩌자는 기미로 그와 맞서기도 했다. 그때는 교육법이 엄하지 않다보니 교원들이 아이들한테 함부로 체벌을 주는 현상이 보편적이였다.

하지만 리선생은 교단에 발을 들여놓는 그 순간에 먹은 마음이 바로 절대로 아이들을 함부로 꾸짖거나 때리지 말며 그들의 인격을 무엇보다 소중이 여기는것이였다. 그는 높은 책임감으로 멀어져있는 애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항상 애들과 함께 한마음이 되여 공부도 하고 생활도 하면서 정을 쌓기 시작했다.

리선생은 휴식일이 따로 없이 늘 아이들과 학교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그렇게 정성으로 교단을 가꿔가던 어느날 한국으로 갔던 로교원이 돌아오게 되였다. 하여 그는 자기가 그처럼 아끼고 사랑하던 교육사업을 떠나야만 했다.

학업을 완성하지 못한 상처가 금방 아물기 시작했는데 다시 학교문을 나오게 되니 당시 그의 심정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리선생과 갈라질수 없을 정도로 깊은 정이 든 전 반 학생들이 소흑판과 분필 한통을 들고 리선생네 초가집을 찾아왔다.

아이들은 오늘부터 아예 리선생네 집에서 공부하겠다고 훌쩍거리며 을러멨다. 당시 리선생은 아이들을 조용히 교육하여 모두 학교에 가도록 하였는데 애들은 며칠이고 학교를 가지 않았다고 한다. 하여 학교 교장선생님이 직접 리선생을 찾아와 다시 학교에 출근할것을 요구했다.

“애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교육은 바로 서는것이다”

“애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교육은 바로 서는것이다”이는 리창현선생님의 명확한 교육관이다.

학교에 다시 돌아온후 리창현선생은 교장선생님의 요구대로 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았다. 금방 1학년에 입학한 애들을 한 남성교원이 책임지고 담임을 한다는 점에서 당시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의견이 많았다. 일부 학부모들은 아예 도리머리를 저었고 심지어 어떤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를 다른 학급으로 전이하려는 의향까지 보이기도 했다.

이런 압력앞에서 리선생은 그 어떤 책임감을 절실히 느끼게 되였으며 이를 일종 동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한걸음 한걸음 내 딛기 시작했다. 여직껏 고급학년만 가르치던 그가 아직 젖냄새도 채 가시지 않은 어린아이들을 가르친다는것은 실로 어려움이 아닐수 없었다.

세상물정을 모르고 여기저기에 마음대로 뛰여 다니면서 늘 빌빌 울어 대는 어린것들을 지켜보면서 리선생은 교육사업의 중임을 진정으로 절감했던것이다. 여기에서 리선생은 소학교 1학년 담임사업의 스타스선을 그었다.

리선생은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늦게 퇴근하면서 아버지다운 사랑으로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보살펴주면서 점차 그들과 정을 쌓기 시작했다.

처음에 아이들은 담임교원이 남자선생이니 퍼그나 두려워하면서 누구나 그의 곁에 다가서려 하지 않았다.

리선생은 아이들에게 정상적인 과당수업을 참답게 진행함과 동시에 일요일휴식일이 돌아오면 아이들을 자기집에 불러다 재미나는 아동이야기도 들려주고 어린이노래, 글쓰기를 하나하나씩 가르치느라 더없이 바삐 보내야 했다.

그의 정성으로 아이들은 차츰차츰 그와 가까이 하면서 정이들기 시작했는데 그가 매일 아침 출근하여 대문에 들어설 때면 애들이 너도나도 달려 와”선생님 안녕하세요!”하면서 인사말을 올리고 차렸자세로 경례까지 드리군 했다. 이 감격적인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리선생은 너무도 기쁘고 행복했다.

조선어문과에서 그는 1학년부터 애들의 일기쓰기에 중시를 돌려왔는데 한번은 한 녀자애의 일기를 읽으면서 너무도 감격적이여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그애의 일기내용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선생님, 래일부터 좀 늦게 천천히 출근하세요. 청소는 우리가 할테니깐 걱정하지 마십시요”

담임선생님이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여 청소하는 그 모습이 애들의 마음속에 기억되였던것이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겼던 교원생애, 되찾은 교원인생 영원히 소중하게 여기렵니다”

그렇게 눈동자처럼 아끼고 사랑하던 교원사업이 또 하나의 아픔으로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학생원천으로 말미암아 학교가 문을 닫게 되였던것이다. 그처럼 하고 싶은 교원사업이였건만 이제 문을 닫아야 하는 현실앞에서 리창현선생님은 수많은 설음과 아픔을 묻어둔채 학교대문을 나서야 했다. 여러 마을의 촌소학교를 통일시켜 전부 향진중심소학교에 집중시켰던것이다.

리선생의 교원생애는 이로서 막을 내리였고 젊은 나이에 이제 곧 연해도시로 나갈 타산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우연하게 소학교 6학년을 다니는 이모네 녀동생을 학교에 붙이려고 향중심소학교로 찾아갔댔는데 마침 교장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호감을 얻은 리선생은 행운스럽게 또 다시 향중심소학교에 민영교원으로 출근하라는 교장선생님의 부탁을 받게 되였다.

이리하여 1998년 3월, 리선생은 향중심소학교에서 깨여진 교원의 꿈을 다시 꾸게 되였다. 그당시 리선생은 갓 졸업을 앞둔 6학년학급을 선택했는데 그의 사업열정은 전교 교원들의 한결같은 호응을 자아냈다. 그의 정성과 사랑은 또 하나의 새로운 교단을 장식하게 되였다.

리선생은 인성교육에 각별히 중시를 돌리고 전의 교원들의 억압하에 공부를 해야했던 학생들이 자각적으로 공부를 찾아하는 새로운 학교기풍를 형성시켰다. 항상 자신을 낮추고 언제나 애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리선생의 교원자세가 학생들의 존경을 자아냈다. 리선생은 점차 학생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다가섰다. 이상하리만큼 말썽이 많았던 애들도 리선생의 학급으로 옮겨지면서 놀라운 전변을 가져왔다.

이 학급의 류홍화 녀학생은 옹근 4년동안 혼자서 교무실 청소를 도맡아하는 소행으로 많은 학생들을 감동시켰는바 “전국 10명 최우수소년” 영예를 지니게 되였으며 그가 지도한 한 남학생은 몇천명이나 되는 전국 조선족소학생 백일장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기꺼운 성적을 따내여 학교영예를 빛내였다.

리창현교원은 기자에게”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겼던 교원생애, 되찾은 교원인생 영원히 소중하게 여기렵니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에 대한 진정은 교육의 가장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리선생이 맡은 학급에는 적지 않은 한족애들이 있었다. 조선족아이들도 우리 말을 잘 못하는 형편에서 한족아이들을 가르친다는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다. 특히 과당교수에서 말뜻을 알아듣지 못해 몹씨 안타까와 하는 애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는 얼마나 걱정스러웠던지 모른다.

처음에는 한족말로 좀씩 번역도 해주면서 자음과 모음을 한글자 한글자씩 가르치던데로부터 단어읽기, 보고말하기, 보고쓰기, 유희놀이 등 여러가지 교수방법을 리용해 한족아이들의 주의력을 집중시키고 학습흥취를 자아냈다.

그랬더니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해서 가만히 앉아만 있던 한족애들이 차츰 우리 말과 우리 글을 배우기에 힘을 기울였고 점차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알아듣고 리해할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되였다.

특히 리선생은 한족아이들을 1학년부터 4학년까지 4년간이나 직접 가르치면서 데리고 올라왔는데 그 애들이 지금은 조선족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조선족아이들 못지 않게 조선어로 대화하고 공부도 잘해 학부모들은 물론 학교와 사회의 충분한 긍정과 호평을 받았다.

이렇게 리선생은 편벽한 시골학교에서 애들과 울고 웃으면서 10년동안이나 담임교원사업을 열심히 해왔다.

“후진생을 위한 사업은 교원의 가장 신성한 의무입니다”

리선생이 가르치는 학급에 한 남학생이 있었는데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 실로 교육하기 어려웠다. 여러곳의 학교를 다녔지만 모두 퇴학을 맞고 이 학교로 찾아 온 것이다. 그 당시 교장선생님도 그 학생의 실정을 모르는것은 아니였지만 한 아이라도 버릴수없다는 교장의 신성한 책임감으로 하여 방법이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이”애물단지”가 리선생에게 차례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 학생은 학급의 애들보다 두살이나 이상이였고 성격이 또한 괴벽하여 그 누가 자기 이름을 불러도 무작정 때리고 욕했으며 가끔 교원이 뭐라고 말하면 씩씩거리면서 정신없이 달려들군 하는 그런 한심한 아이였다. 그래서 일부 동료선생님들은 리선생과 장난으로 하는 말이 “리선생은 참으로 복이 많다니깐”라고했다.

교원들은 모두가 품행이 바른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고있다. 그렇다면 문제가 많은 아이들이 갈곳이 없게 되는것이다.

리선생은 아무런 불평도 없이 먼저 그 아이에 대하여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저 말없이 조용히 지켜보면서 문제의 해결책을 어디로부터 착수해야 할지 사색을 더듬었다. 우선 먼저 시간제한을 주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하루빨리 고치도록 요구했다. 하여 그렇게 한심하던 아이가 이 학급에 와서부터는 그저 리선생의 눈치만 슬금슬금 보면서 매우 불안해하는 표정이였다. 가끔 리선생은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기도 하고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처음으로 사랑과 칭찬을 받은 그 학생은 자신의 부족점을 고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교류를 거쳐 살펴보니 이 학생의 마음이 나쁜것이 아니였다. 부모들의 리혼과 더불어 애의 교육면에서 문제가 있었던것이다. 이 애가 어떤 일을 해도 되고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개념이 근본상 없었던것이다. 시간만 있으면 리선생은 이 학생과 개별적담화를 하군 하였는데 그 내용은 거개가 어떤 사람이 나쁜 버릇을 고치고 훌륭한 인물이 되였다는 등 진실한 사실들이였다.

반복적인 담화를 거쳐 이 학생은 점차 자신의 나쁜 버릇을 고치기 시작했다. 그후 이 학생은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공부도 잘하고 동학들과 단결도 좋아 학교선생님들과 동학들이 바라는 참된 학생으로 되였다.

리선생은”후진생을 위한 사업은 교원의 가장 신성한 의무입니다”라고 감명깊게 말했다.

“지위가 변하고 일터가 변했지만 민족교육에 대한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근 14년간 줄곧 조선족소학교에서 담임교원사업을 착실히 해온 리창현교원은 그간 수많은 민족인재를 양성하기도 했다. 졸업한지 10여년이 되는 학생들마저 지금까지 리선생을 잊지 않고 설명절이면 꼭 꼭 찾아온다고 한다.

그간 리선생은 묵직한 영예를 안아오기도 했다.
현”우수교원”,”우수담임교원”,”선진사업자 “등 영예칭호를 수여하고 성, 시에서 조직한 각종 지식경색에서 수차 1등상을 이룩했으며 2007년도에는 정부에서 주는 흑룡강성 농촌교육인재상을 수여받고 수십편의 론문이 국가급, 성급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8년에는 그가 쓴 수필”딸 며느리 그리고 된장과 고추장”이 현용 조선족고급중학교 필수2에 수록되고 100여편의 민족교육에 관련 보도들이 흑룡강신문, 길림신문, 중국조선족교육 등 영향력이 있는 신문잡지에 륙속 발표되면서 보다 높은 지명도를 갖추게 되였다. 전국, 전성에서 조직하는 각종 교원 글짓기경색에서 십여차에 달하는 상을 수여받았으며 중국조선족소년보사로부터 “최우수지도교원”영예를 지니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업성과로 하여 리창현교원은2007년도에 한 보통민영교원으로부터 국가 정식교원으로 전변되였고 2010년에는 자랑스럽게 녕안시조선족소학교로 전근되였다.
학생이 많고 범위가 엄청 큰 시가지 학교지만 리선생은 자신의 높은 사업심과 교육리념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교단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 학교에 갓 전근되여 왔을 때다. 학교에서는 1학년학급을 그 한테 맡겼다. 전교에서 유일하게 남성 교원으로서 담임을 하자니 어려움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항상 애들의 발전을 념두에 두고 인성교육을 중시하면서 학생마다 발전하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리선생은 학급에 한족아이들이 많은 상황에 비추어 우리 말 하기와 우리 글 리해에 각별히 중시를 돌리고 있으며 부모가 곁에 없는 애들에게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몰붓고 있다. 학용품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애들에 한해서는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주기가 일쑤였다.

이렇게 리선생은 한낱 평범한 일터에서 민족교육에 한시도 게을리지 않았으며 매 학생마다의 발전을 교육의 좌우명으로 간주하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지난해에는 또 녕안시 교육계통”교원도덕선진개인”으로 당선되는 자랑찬 영예를 지니기도 했다.

20여년간 리선생은 줄곧 손색이 없는 담임교원으로 당당하게 자리를 굳혀왔다. 오늘도 그는 사랑과 정성으로 후대양성에 자신의 일체를 바쳐가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으로 민족교육을 위해 자리를 굳건히 지켜가고 있다.

“좋은 선생님이 따로 없습니다. 오직 애들이 좋아하고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선생님이라면 모두가 좋은 선생님이지요. 애들을 조금 더 걱정하는 그런 마음에서, 애들을 조금 더 사랑하는 그런 마음에서, 애들의 래일을 위하여 걱정하는 그런 선생님이야말로 진정 좋은 선생님입니다.”

이는 리창현선생님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마지막 구절의 한단락의 말씀이다(최창남기자).

안해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고있다
리창현교원의 소조학습법
영예증서를 받고(왼쪽 두번째)
래원: 인민넷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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