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가당안국은 23일, 공식 사이트에 "일본 중국 침략 전범 서면 자백서 선집" 제13집 시라스 이사무를 발표했다.
제13집의 개요와 시라스 이사무의 서면 자백서에 따르면 그는 1919년 일본 히로시마 현에서 태어나 1940년에 중국 침략 전쟁에 참가했으며 1945년 8월에 포로되였다.
중요한 죄행은 다음과 같다
1940년 5월, 호북성 조양현에서 일당과 함께 "몽둥이로 위협해 2명의 중국 농민 남성더러 중국 녀성 2명을 강간하게 했다".
1940년 6월, 호북성 형문현에서 중대 초병이 "서른 대여섯살쯤 돼보이는 중국 평화 인민 남성 1명을 체포했고 시라스 이사무가 총검으로 찔러죽였다."
1941년 5월, 형문현에서 "짚더미에 숨어있는 스물한두살 좌우의 중국 녀성을 중국 인민의 가옥 내로 끌고 들어가 1명의 동료와 함께 윤간했다."
1943년 12월 25일, 호북성 원안현에서 "백양사(白陽寺) 대학살"에 참가했다. "대대장 야마나카 타카오 대위가 '바이양스촌의 주민을 전부 죽여버려야 한다. 녀성과 아이도 모조리 말이다. 가옥은 전부 불태우고 물자를 모두 징발하라'고 명했다. 대대는 이 명령에 따라 바이양스 촌의 노인, 녀성, 아이를 포함한 100명 중국 평화인민을 도살했고 70채 이상에 달하는 중국 인민의 가옥을 불살랐다."
1944년 3월, 호북성 당양현에서 "나홀로 중국인민 가옥으로 쳐들어가 스물 한두살 좌우의 중국 녀성을 침대에 눌러 제압한뒤 강간했다."
1944년 4월, 당양현에서 "나홀로 왕가골목 서쪽 어구에 위치한 중국 인민의 가옥에 쳐들어가 서른 대여섯살에 달하는 중국 녀성을 총검으로 위협해 강간했다."
1944년 5월, 당양현에서 한명의 중국 평화 남성을 잡아다 "나와 다른 2명이 그의 손발을 묶은 뒤 거꾸로 련못에 2분 정도 집어넣어 많은 물을 먹게 했다. 이렇게 3차례 고문했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
1945년 4월, 호북성 양양현에서 "나는 12살 좌우의 소녀 한명을 총검으로 위협해 강간했고 그 결과 음부에 파열상을 입혔다."
침략기간 위안소에서 "중국 녀성 13명을 32 차례, 조선 녀성 7명을 38차례 강간했다."
래원: 국제방송 | (편집: 장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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