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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웅 시집 《등대》 출판

2017년 03월 31일 10:57【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박정웅 시집 《등대》가 최근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정식으로 출판되였다. 박정웅의 이전 작품과 근작시 120여수를 수록한 이 시집은 “잉태”, “수련”, “이것이 나요”, “추락과 비상 사이”, “먼지들의 반란”, “내 마음의 락서장” 등 6부로 이루어졌다.

박정웅의 시는 시상을 고도로 응축시켜 표현하고있어 짧고 정제된 구성에 철리성과 회화성을 지니고있다. 그는 섬세한 언어구사에 미묘한 감각적이미지의 창조보다는 비유적, 상징적 이미지의 창조에 주력하고있다.

이 시집은 옳바른 삶의 진실과 가치를 찾아 고행하는 한 시인의 청순하고 순결한 심성, 사회와 인생에 대한 철학적사고의 깊이를 가지고있다. 연변대학 우상렬교수는 시집 서언에서 “박정웅선생의 시는 우리 삶에 빛이 되고 감로수가 되기에 충분하다. 누구나 한번 읊으면 녹아나리라. 그 따뜻함과 감미로움에!”라고 평론했다.

박정웅 시선(10수)

등대

무엇에 홀린듯
사람들은 앞만 보며
바람처럼 달려갑니다

나만 홀로 여기 남아
찬바람을 맞으며
허름한 등대로 서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가야 할
어두운 항로를 밝혀주는
거룩한 등대는 아닙니다

쉬임없이 달리던 사람들이
어느날 주춤 멈춰서 돌아보는
짧고 희미한 향수(鄕愁)입니다

주마등 같은 이 세상에서
나는 의연히 여기 머물러
불변의 진수(眞髓)를 외로이 연출합니다

청순한 목청의 너

오늘 아침
창밖에서 새가 울었다
어수선한 꿈속을 헤매는 나를
청순한 목청으로 불러주었다

저 휘트먼이 노래한
밤중에도 자다 깨여
울어야 할 죄가 없다는
행복한 새가
오늘 아침 창밖에서
어수선한 꿈속을 헤매는 나를
청순한 목청으로 구해주었다

고마웁다고 인사라도 하고싶다만
청순한 목청의 너를
놀래울가 걱정이 된다

글쎄, 내 목소리가
석쉼해진지 오래되여서

무수한 시간, 무수한 나

쿵- 쿵-
절구로 시간을 찧어
보드랍게 가루를 내
훨- 훨-
허공에 날리고싶다

무수한 시간의
미립들이
신성한 우주빛속에서
반짝- 반짝-
빛나는걸 보고싶다

시간은
불사(不死)의 존재
찧을수록
늘어만가는
시간의 완전한 미립들

무수한 시간의
미립들속에서
너울- 너울-
신들려 춤추는
무수한 나를 보고싶다

가을단상

꿈은
멀어져가고
맺힌것은 아픔이였다

떨어진것들은
흙으로 돌아가고…

아, 봄은 한낱
가을의 동화―

카프카의 주인공처럼
꽃같은 상처를 지닌채
끝없는 겨울속을
나는 방황해야 하는가

자화상

그림자처럼
무시당하고 밟히는 사람

그림자처럼
수상(殊常)하고 불길(不吉)한 사람

그림자가 길어
외롭고 지쳐 보이는 사람

마침내 자신(自身)이
그림자로 되여가는 사람

감수(甘受)

있는 그대로
생기는 그대로
감수하리다

사랑은 사랑 그대로
외로움은 외로움 그대로

기쁠 때는 노래 부르고
슬플 때는 통곡하면서

아픔은 아픔 그대로
절망은 절망 그대로

온순(溫純)한 아이처럼
자기(自欺)가 없이
삶은 삶 그대로



1

포효하는 태양아래에서
유린하고 유린당하던 그림자들이
밤의 커다란 우물속에서
기갈이 든 말 같이
어둠을 들이마신다

환영에 지친 눈들은 감기고
밤의 혼돈세계의
축축한 원시촉각들이
갈망하던 밤의 실체를 더듬는다

밤의 밑바닥에서
밤의 거울을 보면
령혼은 발광하는
한마리 기이한 새이다

빛의 살을 가득 맞으며
푸득이던 령혼들이
밤의 수림속에서
지친 날개를 접는다

악몽은―
수의 입은 대낮이다

2

어디론지
밤이 스며들면
집잃은 인류의 아이의
황황한 얼굴이
빛의 문에 나타난다

“사랑” 하고 불러보면

소년의 시절
“사랑” 하고 불러보면
왠지 가슴이 설레이고
달콤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제에 와서
“사랑”하고 불러보면
왠지 가슴이 답답하고
씁쓸한 맛이 있습니다

고운 옥돌을
실수로 깨뜨린 사람처럼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 날카로운 조각이 남아
때때로 마음을 찌릅니다

“식물인간”

가시덩굴이
내 온 몸을 휘감으며
무성하게 자라난다

무수한 가시들이
내 온 몸에 촘촘이 들이박힌다

가시덩굴에 가리워지고
가시덩굴과 하나로 된 나는
명실공히 “식물인간”이다

어느날
길고 날카로운 가시 하나가
내 살과 뼈를 뚫고 들어와
내 심장을 콕 찌른다

아직은 아픈 느낌이 있다

현실속의 현실

현실의 수림(樹林)에서
나는 길을 찾아 헤매는
불행한 아이이다

현실속 현실의 작은 방에서
나는 어느덧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였다

현실의 수림에서 허둥대는
불행한 아이를 바라보며
백발의 할아버지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있다

래원: 인민넷-조문판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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