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13)
2016년 05월 06일 13:18【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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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우리 팽장군
1941년 봄, 우리 조선의용대의 대부분 성원들은 태항산항일근거지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진기로예변구정부 즉 산서, 하북, 산동, 하남 변구정부가 성립될 때에는 우리도 그 경축대회에 참가하였다. 변구정부 초대의 주석은 양수봉동지라고 기억이 되는데 그는 남이 말하는것을 들을 때면 손바닥을 쪽박같이 오그려서 귀바퀴에 대고 유심히 듣는 버릇이 있었다. 하여 나는 양주석이 가는귀가 먹지 않았나 의심하였다. 그날 밤의 산골짜기는 설맞이기분처럼 흥성흥성 끓었다. 수없이 줄닿은 홰불들, 중국식농악무—양걸춤에 성수가 난 사람의 물결, 이것이 정말로 사면이 적군에게 둘러싸인 적후사령부의 소재지 동욕(桐峪)이란 말인가 의심이 들 지경이였다.
경축기간에 로신예술학교의 사제들도 연극공연을 하였는데 산골에 전등이 없으므로 가스등을 가지고 무대조명을 하였다. 한데 그 기술이 어찌나 고명한지 효과는 아주 만점이였다. 당시 그들이 무대에 올린것은 조우의 “일출”, 고골리의 “검찰관” 따위였다.(“검찰관”의 주인공 흐레쓰따꼬브는 극의 내용에 따라 매번 다 무대에서 진짜 닭다리 하나씩을 뜯어먹게 되므로 우리는 모두 그 역을 담당한 배우의 팔자를 부러워하였다.)
당시 무대에 올린것들중의 하나로 제목은 잊었으나 다음과 같은 한 대목이 들어있는 극이 있었다.
중경 어느 요인의 관저에서 두 도련님이 복습인가 예습인가를 하고있는데 가정교사가 우리 중국에는 어째서 공산주의가 맞지 않는지 그걸 말하라고 한즉 큰도련님이란게 머리를 쥐여짠 나머지에 대답한다는 소리가
“기후때문이 아닙니까?”였다.
그 대답을 듣고 나는 너무 우스워서 자발머리없이 큰소리로 깔깔 웃었다. 그 바람에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나를 돌아보았다. 내 바로 곁에 앉은 강진세는 무안해서 얼굴이 금시에 홍당무가 되며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직신직신 건드렸다. 하지만 기분이 날것 같이 거뜬해서 웃음이 절로 터지는걸 어떻건단 말인가. 극의 내용이 워낙 우습기도 하려니와 그보다도 태항산의 자유로운 공기가, 해방구의 친절한 분위기가 샴팡처럼 상쾌한 향미를 갖다안겨서 웃음이 절로 터지는걸 어떻건단 말인가.
강진세작은아씨는 오랜 세월 나하고 짝을 지어 다니며 나때문에 얼을 입은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해도 그는 원망도 투정도 한 일이 없다. 나는 그에게 숱한 우정의 빚을 지고도 갚을념을 안하는 도척이노릇만 하고 살아왔다. 그의 나이가 나보다도 두살이 우이니까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는 법”이라고 쓱싹 수염을 내리쓸수도 없다. 내 마음 한구석에는 항시 그에 대한 미안한 느낌이 둥지를 틀고있다. 죽어서 눈을 감기나 하면 잊혀질는지…
어느때인가 한번 우리는 팽덕회동지를 초청해다 강화를 들은적이 있었다. 우리하고 한마을(상무촌)에 사는 로신예술학교의 사제들도 다 와서 함께 들었는데 그들의 인수는 기실 그리 많지 않아서 모두 합해도 한 100명 되나마나하였다.
그날 팽장군은 말을 타고 왔는데 뒤에 딸린것은 단 한명의 경호원뿐이였다. 우리는 그 지경 단출한 행차를 눈앞에 보자 가슴속에 경앙하는 마음이 들물처럼 벅차는것을 느꼈다. 하여 나는 깨달았다. —지도자급인물의 위신이란 틀을 차려서 세워지는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 반비례한다.
그전에 우리는 다들 팽덕회동지는 우스개소리란걸 통 할줄 모르는 엄격한 장군으로만 알고있었다. 한데 그는 뜻밖에도 첫시작부터 웃음이 만면해서 해학적인 어투로 말머리를 떼는것이였다.
“이제 내가 오다가 길에서 우리 전사 둘을 만났는데 내가 누구인줄을 뻔히 알면서도 경례를 안하고 그저 히쭉 웃기들만 한단 말입니다. 깃걸개도 걸지 않아서 헤벌쭉한데다가 걸음새도 씩씩하지가 못하단 말입니다. 지금 우리 팔로군은 규률이 너무 물러서 야단입니다. 적군에 비해서 퍽 못하지요. 적군의 규률은 엄격하기가 뭐 여간만 아닌데…”
나는 얼른 제 깃걸개는 걸렸나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강진세가 눈결에 내 하는짓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팽장군은 잠시 말을 끊고 우리를 쭉 한번 둘러보았다. 그 모습은 위엄스러운 장군이라느니보다는 순박한 농민이라는게 더 알맞을것 같았다.
“그렇기는 하지만,”
하고 팽장군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는 적을 이겨낼 신심을 가지고있습니다. 그건 어째서? 적군의 엄격한 규률은 강박으로 세워진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병들사이에는 근본적인 리해충돌이 있습니다. 그것은 조화할수 없는 모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규률은 무릅니다, 확실히 무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하가 일치합니다. 우리의 전사들은 자신의 해방을 위해서 싸우고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반드시 이길 힘의 원천입니다!…”
팽장군은 제기된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이한 끝에 이런 우스개소리까지 하는것이였다.
“여러분은 내 등이 이렇게 굽은것을 보고 아마 속으로들 웃을겁니다. 사령원이라는게 어째 저 모양이냐고!”
우리들속에서 집이 금시 떠나갈듯한 폭소가 터졌다.
“우리 집은 살림이 구차해서 나는 여라문살적부터 힘든 일을 해야 했습니다. 밤낮 무거운 짐을 지고메고하다나니 사람이 어디 자랄 새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결국은 이 모양이 된겁니다…”
강진세와 나는 서로 돌아보고 눈짓을 하였다. 우리는 가슴속에 다시한번 경앙의 난류가 벅차는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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