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넷 조문판: 4월 19일은 애국장령 부작의(傅作义) 서거 42주년이 되는 기념일이다.
부작의, 자 의생, 산서 영하사람. 1910년 태원륙군소학교 입학, 1911년 신해혁명이 터지자 태원에서 반청봉기에 참가, 봉기 학생군 소대장 담임, 1915년 보정군교 제5기 보병과에서 학습. 1924년후 산서군 제4려 제8퇀 퇀장, 제4사 사장으로 임명, 1927년 북벌에 참가, 이듬해 제3집단군 제5군퇀 총지휘 겸 천진경비사령으로 임명. 1930년 중원대전에 참가, 진포선(津浦线) 총지위로 임명, 1931년 진수군(晋绥军) 제35군 군장, 수원성(绥远省)정부 주석 담임. 1933년 부대를 이끌고 장성항일작전에 참가. 1936년 수원항전 지휘, 중외에 이름을 날린 "백령묘대첩"을 거두었다. 그후 제7집단군 총사령, 제8전역 부사령관, 제12전역 사령관 겸 수원성, 차하얼성 정부 주석 담임, 일본이 투항한후 중국정부를 대표하여 열하, 차하얼, 수원에서 일본군의 투항을 접수, 그후 화북 "토벌총대" 총사령으로 임명, 1949년 부대를 이끌고 북평을 평화적으로 해방했으며 수원의 평화적인 해방을 이루게 했다.
모택동은 부작의를 "북경을 평화적으로 해방하는데는 의생의 공로가 가장 크다. 인민은 영원히 당신을 잊지 않을것이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주은래도 "인민을 위해 큰 공을 세웠다"고 부작의를 칭찬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후 부작의는 제1임 수리부 부장을 맡았다. 그는 서거 1년전 정중한 사절을 비준받았으며 줄곧 23년간 사업했다. 그의 발자취는 전국 산수 곳곳마다에 남겨졌으며 천산의 기슭에서부터 사막에 이르기까지, 송료평원으로부터 주강삼각주의 수리전력공지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의 발자국을 찍혀있다. 엄중한 수재가 발생했을시에도 부작의는 직접 홍수방지 재해구조 제1선에서 분투했으며 새 중국의 수리전력사업에 영원히 지울수 없는 공헌을 했다.
1974년 4월 19일 부작의는 병으로 북경에서 서거했다.
래원: 인민넷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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