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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백인] 항일혁명의 굳은 절개 김순희렬사

대형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백인"(10) 

2013년 06월 05일 16:57【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화룡시 투도진에서 20리가량 떨어진 골안에는 약수동항일근거지가 있다. 이곳은 항일녀영웅 김순희가 농민들을 이끌고 굴함없는 항일혁명투쟁을 벌인 곳일뿐만아니라 영웅이 중국인민의 해방사업을 위해 귀중한 생명을 바친 곳이기도 하다.

김순희는 1910년에 안도현 소사하의 한 빈곤한 가정에서 태여났다. 그는 어렸을 때 야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혁명가곡도 부르면서 차차 혁명의 도리를 깨달았다

1930년에 김순희는 당지의 농민적위대에 참가하였으며 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게 되였다. 김순희는 1931년 2월과 3월 두차례에 걸쳐 비밀리에 약수동에 왔다갔다. 중공평강구위에서는 김순희를 약수동학교 교원의 신분으로 자기를 위장하면서 주로는 부녀사업을 책임지게 했다. 김순희는 당지 군중들을 동원하여 학교를 꾸리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쳐주었으며 마을의 군중들에게는 야학을 꾸려 혁명도리를 알게 했다.

그해 4월, 김순희는 공개적으로 약수동 군중들 앞에 나타났다. 약수동 적위대 부대장인 손태익과 결혼하고 적위대 대원 겸 약수동 부녀구국회 주임을 맡았다.

약수동에 대한 적들의 토벌이 가심해지자 적위대는 산으로 들어갔다. 적위대가 산으로 들어간 후 김순희는 군중들을 이끌고 지주와 투쟁했으며 식량과 의복 등 필수품을 제때에 적위대에 공급하는 일들을 착실하게 잘하였다.

특히는 소선대를 조직하여 척후사업을 감쪽같이 잘 수행하였다. 김순희는 일찍 자기가 소선대에서 하던 솜씨 그대로 적을 타격할수 있는 모든 재간들을 어린이들에게 잘 전수하였다. 소선대 대원들이 적들의 전선을 끊어버린다거나 막대기속에 비밀쪽지를 넣어가지고 나르게 하거나 꼴단속에 삐라를 넣어가지고 다니게 하는 등 기묘한 방법들은 한번도 실수하지 않았다.

1931년, 가을걷이가 끝나자 김순희는 전 현적으로 전개된 “추수투쟁”에 적극 뛰여들었다. 약수동혁명조직에서는 이 해에 지주에게 소작료를 한알도 바치지 말기로 결정지었다. 이 간고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김순희는 군중들을 찾아가 량식은 우리가 피땀 흘려 지은것이므로 지주에게 주어서는 안된다는것과 량식을 저비하였다가 더러는 적위대에 식량으로 보내고 더러는 군중들의 식량으로 해야 한다는것을 반복적으로 선전하였다.

이미 먼저 바친 농민들의 소작료도 도로 찾아오게 하였다. 이렇게 되자 등이 달아난것은 지주였다. 그해 10월의 어느날 두도구의 서병원지주가 약수동에 소작료 재촉하러 온것을 알게 된 김순희는 추호의 양보도 없이 서지주에게 소작료를 한알이라도 받아갈 생각을 말라고 꾸짖고는 소선대원들에게 명령하여 지주를 약수동에서 쫓아버렸다.

약수동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오던 두도구의 일본령사분관과 경찰서에서는 1932년 음력 10월하순부터 11월초순 사이에 련속하여 세차례나 약수동을 대토벌했다.

1932년 12월 1일 (음력 11월 4일) 이른새벽이였다. 200여명되는 일본수비대, 경찰, 자위단 놈들이 갑자기 약수동을 3면으로 포위해 들어왔다. 왜놈들이 어둠을 타서 세린하쪽으로 에돌아 기여들었던탓으로 마을에서 몇리 떨어져있는 도끼지광(진화)의 첫 보초선에서 적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두번째 보초선인 마을부근의 조개산보초선에서 적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마을은 이미 포위에 든 뒤였다. 당조직에서는 혁명력량을 보존하기 위하여 간부, 유격대원, 적위대원과 소선대원들을 즉시 피신시켰다. 허나 김순희는 대오가 떠난 뒤의 량식처리문제를 자신의 안전보다 더 중히 여기였다. 게다가 만삭이 된 자기가 함께 따라간다면 필연코 대오가 안전하게 이동하는데도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고 기어이 마을에 남았다.

마을에 뛰여든 토벌대는 혈안이 되여 날뛰였다. 놈들은 주구를 앞세우고 집집마다 수색했다. 놈들은 10여채의 집과 학교에 불을 질렀다. 연기와 불길이 삽시에 마을을 뒤덮었다. 집안에서 이 참상을 내다보던 김순희는 갑자기 일제놈들의 구두징소리가 들려오자 제꺽 물동이를 팔에 끼고 나서려고 했다. 정주문이 벌컥 열리더니 왜놈들이 우르르 쓸어들어와 그녀의 가슴에 총창을 들이댔다.

“어디로 가?”

“물 길러 가요.”

“흥, 물 길러 간다구? 잔말말고 따라왓!”

김순희는 태연히 문을 나섰다. 마을에서 보초를 섰거나 앓아서 미처 피신하지 못한 적위대 부대장 정태경, 리덕길, 소선대 대장 김득봉 등도 붙잡혀 정태준네 뜨락에 끌려왔다.

김순희는 적들이 자기의 신분을 알고있다고 직감했다. 순희의 일거일동을 은근히 살피던 토벌군은 순희를 붙잡아놓고 심문을 들이댔다.

“네년이 김순희지?”

“그렇다!”

“빨갱이들이 다 어디로 갔느냐?”

“모른다!”

“네 서방은 어디로 갔느냐?”

“모른다!”

“식량은 어디다 감췄느냐?”

“모른다!”

그러자 놈들은 다짜고짜로 물매를 들이댔다. 그래도 모른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으니 놈들은 모난 참대저가락을 손가락새에 끼워넣고 마구 비탈았다. 김순희는 이발을 옥물고 아픔을 참았다. 악형을 들이대다가 나중에는 정태준로인네 집마당에 끌고갔다. 거기에는 이미 적지 않은 동지들이 끌려와 있었다. 자기를 바라보는 동지들의 눈에서 큰 힘을 얻은 김순희는 더욱 견정하게 적들과 맞섰다.

놈들은 총박죽으로 김순희의 배를 쿡쿡 찌르면서 빈정거렸다.

“이년아, 배속에 뭐가 들어있느냐?”

“몰라서 묻느냐? 잘나면 네놈들을 잡을 영웅이구 못나면 대문거리를 쏘다니는 너들같은 놈일거다!”

순희의 말은 서슬푸른 칼날인냥 놈들의 가슴을 찔렀다. 악에 받친 놈들은 더욱 미쳐 날뛰였다.

“빨갱이년! 공산군 어디 갔어?”

“기다려라, 이제 곧 네놈들을 잡으러 올거다!”

야수같은 놈들은 김순희를 땅바닥에 쓰러뜨린 후 만삭이 된 배우에 널판자를 올려놓고 두끝을 마구 내리눌렀다. 순희는 까무러쳤다가는 다시 정신을 차리군 했다.그래도 입을 열지 않으니 이번에는 주전자로 고추물을 입에 쏟아넣었다.모진 고통을 참으면서 몸을 뒤척일 때 배속의 새 생명이 꿈틀거렸다. 세상에 태여나지도 않은 생명마저 야수같은 일제놈들에게 불행을 당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심장에 칼이 박히는것 같았지만 김순희는 입을 악물고 참았다.

“이년, 말하지 않을테냐? 네 혀바닥이 견디나 이 피대가 견디나 어디 한번 보자!”

갈퀴같은 피대가 련속하여 김순희의 몸을 감아쳤다. 놈들은 혹형으로 김순희의 입을 열려고 날뛰였다. 그러나 그건 망상이였다. 순희는 악 소리치면서 입을 악물었다.혹시 정신이 혼미해진 사이에 비밀이라도 루설할가봐 순희는 이발로 혀를 물어 끊어버렸던것이다.김순희는 눈을 똑바로 뜨고 놈들을 쏘아보더니 흘러내리는 뜨겁고 붉은 선지피를 놈들의 상판대기에 콱 내뿜으며 열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약수동에 세워져있는 김순희렬사 기념비.

참대는 꺾을수 있어도 김순희동지의 혁명에 대한 굳은 절개는 절대 굽힐수 없었다. 악에 받친 놈들은 김순희를 널판자에 동여매서 그녀의 백부인 정태준로인네 집안에 처넣었다. 간악한 놈들은 반죽음이 된 정태준로인과 피투성이가 된 김득봉, 정태경, 리덕길, 황익두 등 여러 명을 한집안에 처넣은 후 기관총으로 소사하고 집에 불을 질렀다.

죽는 순간까지도 혁명의 비밀을 고수하기 위해 굴함없이 싸운 절개굳은 녀항일영웅 김순희는 불길속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다.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22세밖에 안되였다.

현재 약수동에는 항일혁명을 위한 굳은 절개를 굽히지 않은 항일영웅 김순희렬사의 기념비가 세워져있는데 후세들에게 생동한 애국주의 혁명교양장소로 되고있다.

약수동에 세워져있는 김순희렬사 기념비
래원: 길림신문 (편집: 김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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