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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항천분야 걸출인물로 우뚝 선 중국조선족

상해항천기술연구원 과학기술위원회 부주임, 고급기술고문, 연구원 리상영의 이야기

2014년 01월 22일 14:12【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2014년 12월 20일 오후 2시,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있은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 시상식야회록화현장에서 제일 첫사람으로 리상영선생의 사적이 소개되였다.

소개화면에서 리상영선생이 총설계사를 맡은 “장정4호을” 운반로케트가 쏘아올린 인공위성이 거대한 굉음을 울리며 땅을 차고 하늘로 높이높이 솟아오를 때 야회현장은 감탄과 격동의 박수소리가 오래오래 울려 퍼졌다. 중국의 궐기를 의미하는 최첨단기술 로케트발사의 주인공이 바로 중국조선족이라는 강한 민족적 자부심과 영광이 200만 중국조선족들을 고무,격려하고도 남음이 있었기때문이였다.

로케트나 인공위성을 연구하는 중국항천(航天)분야에는 근 27만명을 헤아리는 엘리트군단이 포진돼있다. 그속에 우리 민족의 우수한 과학연구일군들이 있어 별처럼 빛을 내고있다는게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수없다. 리상영하면 중국 우주발전사에 살아있는 력사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상영은 1941년 9월 흑룡강성 오상현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여났다. 어릴때 리상영은 오상에서 조선족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면서 책읽기를 특별히 즐겼다. 하지만 당시 오상에 조선족고중이 없어 중학교를 졸업하자 곧장 한족고중에 갈수밖에 없었다. 중국어기초가 상대적으로 박약했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중국어를 익히지 않으면 안되였다. 락오자가 되기 싫었던 리상영은 고중에 올라와서는 죽어라고 중국어공부에 전념했다. 나중에는 “론어”나 “시경”까지 줄줄 외울수있어 전혀 주눅이 들지 않게 되였다.

1957년 쏘련에서 사상 처음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고중생이였던 리상영은 인공위성을 만들어보고싶은 충동과 함께 당찬 꿈을 꾸게 되였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1958년에 모주석께서 “우리 나라에서도 반드시 인공위성을 만들어야 한다”고 단호히 호소했다. 모주석의 그 천금같은 한마디가 우리 나라 우주항공연구의 “개시곡”으로 되였다.

리상영은 모주석의 지시가 내려진 바로 이듬해(1959)에 청운의 꿈을 안고 북경공업학원(지금의 북경리공대학) 로케트학과에 입학하게 되였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련속적으로 들이닥친 3년재해로 온 나라가 기아의 도탄속에 빠져들었다. 그 어려운 굶주림속에서도 리상영은 제일 외국어인 로어에 이어 영어까지 자습했다.

온 나라가 굶주림에 허덕이던 1961년 4월 12일, 이웃나라 쏘련에서 사상 첫 유인우주선인 “보스토크 1호”가 가가린(Yuri A. Gargarin)을 싣고 발사되였다. 가가린이 지구를 한바퀴 돌아온후인 1965년 “보스크쇼드 2호”에 탑승한 우주비행사 알렉세이 레오노프(Alexei A. Leonov)가 사상 처음으로 12분간 우주유영(space walk)에 성공했다. 그것이 우주려행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을 가능한 꿈으로 바꾸어놓은 계기가 되였다. 그때로부터 8년뒤인 1969년에 미국이 “아폴로 11호”를 달에 쏘아올림으로써 달나라에 인류의 발자국을 찍게 되였다.

국제적으로 강대국들이 하루가 멀다하게 로케트로 위성을 쏴올리는데 중국은 긴긴 “문화대혁명”으로 수많은 지식인들이 억울한 루명을 쓰고 과학의 무대에서 쫓겨나 시골로 내려가는 력사적인 비운을 맞이했다. 하지만 워낙 확고한 꿈을 키워왔던 리상영이였기에 그 험난했던 “문화대혁명”도 비껴갈수있었던것 같다. 리상영은 어찌보면 이런 시국이 기회일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여러 분야를 전전하면서 자기가 해야 할 연구에만 몰입했다. 로케트의 동력설계, 원격측정제어, 구조배치 등 여러 부서를 옮겨다니면서 다각적으로 로케트기술 전반을 총체적으로 습득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 기간에 리상영은 쏘련의 “련맹호” 미국의 “타이탄(大力神)” 유럽의 “아리안(Ariane)”등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계렬운반로케트에 대해 접할수있게 되였고 그것들의 성능과 기본원리에 대해 깊이 연구하게 되였다.

짙은 흥취를 갖고 무릇 운반로케트와 관련이 있는 자료는 빠뜨리지 않고 찾아보면서 그것들의 성능, 기술방안, 디자인 등 제반 분야에 대해 깊이 파고들었다.

그러다보니 1970년 29살 젊은 나이에 벌써 “폭풍1호” 로케트연구팀의 총체성능설계사라는 중임을 맡게 되였다. 리상영과 연구팀은 로케트의 력학원리에 근거하여 발동기가 받는 힘을 자상히 분석하고 3000개도 넘는 원격거리측정수치를 합리하게 조절해나갔다. 이렇게 개진한 “폭풍1호”로케트가 1975년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1톤을 초월한 과학위성발사에 성공하게 되였다. 그 당시로 말하면 괄목할만한 성과였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나라에서는3급대형운반로케트 “장정3호”를 연구제작하기로 했다. 그당시 로케트제작에서 3대 기술난제의 하나가 로케트 몸체와 추진제 수송시스템 사이의 종향공진현상이였다. 이런 공진현상이 생기면 발사한 로케트가 눈깜짝할 사이에 부러져 추락하게 된다. 조직에서는 그 관건적인 핵심연구과제를 라상영에게 맡겼다. 그만큼 리상영을 신임한다는 당과 정부의 믿음이였다. 관건은 추진제 수송시스템의 진동수를 준확하게 측정해내는것이였다. 당시 국내에는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리상영은 여러가지 난관을 극복하면서 밤에 낮을 이어 연구에 몰입했다. 쏘련의 로켓기술서적과 미국의 로켓관련 론문들을 탐독하면서 저항법진동수계산모델을 고안해내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매일과 같이 수치계산을 하는게 작업이였다. 지금처럼 컴퓨터가 다 해준다면 얼마나 편했겠냐만은 그 당시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할수밖에 없었다. 꾸준한 탐구로 리상영은 드디여 준확하게 추진제 수송시스템의 진동수를 밝혀낼수있게 되였다. 로케트발사에서의 수직방향종향공진난제가 풀어진셈이였다.

그 뒤를 이어 리상영은 많은 로케트에서 사용되여온 저온추진제를 상온추진제로 교체투입하는 과제를 우선으로 한 “장정4호” 운반로케트연구에 착수하였다. 역시 피나는 노력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과제였다. 지난날 저온추진제로케트로 수송 가능한 중궤도위성의 무게는 고작 600킬로그람밖에 안되였다. 그러나 새로운 상온추진제를 리용한 “장정4호” 로케트가 실제 수송할수 있는 위성의 무게는 1000킬로그람에 도달했다. 물론 지금은 수천킬로그람의 무게를 쏴올리게 되였지만 그 당시로는 획기적인 창신이지 않을수없었다 “장정4호” A형로케트는 상온추진제라는 새로운 기술로1988년과 1990년 두차례에 걸쳐 성공적으로 기상위성을 하늘에 쏴올리는데 성공했다.

최근에 미국, 로씨야 등 우주비행대국들에서는 우주공간에서의 자국의 리익쟁탈을 위하여 빈번하게 과학위성, 간첩위성, 공간실험실같은 여러가지 위성을 발사하고있다. 그런데 익숙한 기술과 풍부한 경험을 갖고있는 그런 나라들에서도 발사에서 빈번히 실패하여 엄청난 경제손실을 보고있다. 위성 하나를 발사하기 위하여 위성과 로케트제조에 드는 돈은 결코 수백만, 수천만딸라가 아니고 수억, 지어는 수십억딸라에 달한다. 우주항공연구는 이 세상 그 어느 과제보다 위험성이 크고 또 고도의 준확성을 요구하는 령역이다. 때문에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적인 차원에서만 할수있는 어마어마한 사업일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지대공미사일(SAM)연구가 시작된 해인 1970년에 리상영에게 미국의 “타이탄2호”와 거의 맞먹는 크기의 2단식 신형로케트인 “폭풍1호(FB—1)” 총체성능설계란 중대한 과업이 차려지게 되였다. 리상영은 이 과업을 맡은지 불과 5년만인 1975년에 “FB—1”로 과학위성을 발사하는데 성공하여 국가과학기술부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뒤 선후하여 “장정4호” A형 운반로케트 부총설계사, “장정2호” D형 로케트 부총설계사, 유인우주선 “신단비전(神丹飞船)”의 부총설계사를 력임하다가 1999년부터 “장정4호” B형운반로케트 총설계사, 총지휘를 맡게 되였다. 중국의 로케트연구에서 총설계사에 총지휘를 독단으로 맡았다는 그 자체가 류례없는 일이였다. 이처럼 중대한 책임을 맡아보면서 리상영은 중대한 기술난제들을 거의 매년 두세가지씩 풀어나갔다. “장정4호” B는 제조과정에 무려 153가지 부품을 새롭게 연구, 개진해야 했다. 리상영은 밤에 낮을 이어가면서 매 부품들에 대한 개조방안을 고안해내여 여러류형의 인공위성을 예정궤도에 쏘아올릴수있는 로케트로 그 성능을 업그레이드시켰다.

2006년 4월에는 “장정4호” B의 기술지표를 또 한차례 승격시켜 국내 최초로 3단식발동기에 “2차 점화기술”을 적용하여 “장정4호” C형로케트로 원격탐측위성1호를 발사하는데 성공했다.

로케트연구는 하나의 방대한 시스템이라고 말할수있다. 산하에 원격제어, 발동기, 구조모형, 원격탐측, 검측시험발사 등 10개의 시스템이 주임 설계사, 부주임 설계사 수십명의 지휘하에 움직이게 된다. 매 시스템마다 다 자체 연구소를 가지고 있다. 매 시스템 산하에도 수백개의 단일계기연구실체가 포진해있다. 말하자면 원격조종분야에만도 180여부서가 있으며 원격제분야에도 48개부서가 있다. 이한 수백개의 연구실체들에서 10만개도 넘는 부품을 연구해내게 되는데 그 제품들이 전국 각지에 있는 수많은 공장에서 생산된다. 그 과정에 동원되는 인원수가 어림짐작으로 수천수만명을 헤아린다.

이한 방대한 기술시스템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있어서 핵심고리가 1급지위계통인 총설계사와 총지휘의 손안에 있다. 어느 한 시스템의 조그마한 실수가 궁극적으로 발사의 실패를 초래할수 있기에 로케트연구는 여하를 불문하고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고도의 준확률을 요구한다.

1999년에 “장정4호”乙형로케트가 제작되여 첫 발사에 “풍운1호” C위성과 “실천5호”위성 두개를 정확하게 예정궤도에 진입시킨 뒤를 이어 “자원1호(1999년)”와 브라질위성(1999년), “자원2호(2000년)”, 국내 첫해양위성인 “해양1호(2002년)”와 네번째 기상위성 “풍운1호”D, “자원2호(2002년)”, “자원1호(2003년)”, “실천6호A(2004년)”와 “실천6호 (2004년)”B, “자원1호2(2004년)”, “요감1호(遥感一号-2006년)”, “실천6호A(2006년)”와 “실천6호B(2006년)”, “자원1호(2007년)”, “요감1호(遥感一号=2007년)”, “풍운3호(风云3号=2008년)” 등 련속 13차에 거쳐17매의 각종 위성을 준확하게 태양동보궤도에 진입시켰다. 이렇게 지금까지 160여개에 달하는 기술개진항목에서 돌파를 가져오면서 17매의 위성을 쏴올린 리상영에게 언젠가 “기적의 사나이”, “백발백중의 명장”라는 별호가 생겨났다. 피나는 노력의 대가로 받은 별호인셈이다.

이런 중대한 성과들로 하여 리상영은 선후로 국가과학기술진보 특등상 2차, 1등상 2차, 2등상 2차와 성, 부급의 1등공 3차, 우주비행상과 과학기술진보상 등 허다한 상을 수상했고 국무원특수수당금 획득자로, 5.1로력모범, 전국로동모범 등 수많은 영예의 보좌에 올랐다. 1999년에는 상해해방50주년을 기념하면서 “해방일보”가 1600만 상해시민을 상대로 50명의 우수인물을 선정하였는데 영광스럽게도 리상영이 그 50명중에 제2위로 선임되여 표창을 받았다.

지난12월20일 시상식후 가진 인터뷰에서 리상영은 “감동중국조선족걸출인물”평의선발활동은 중국조선족사회의 긍적적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추진할수있는 좋은 행사인것 같아서 바쁜 와중에도 참가를 결심하게 되였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리상영선생의 소개에 따르면 원래 상해항천기술연구원에는 2명의 조선족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기타 원사회의같은데 참가해 보아도 과거에는 중국의 최첨단 분야거나 최고기술분야에는 조선족들의 모습이 적잖게 보였지만 지금은 가물에 콩나듯 매우 적다. 그만큼 조선족인재양성의 후속력량이 결핍하다는 말이다. 조선족인재들이 줄어드는 원인에 대해 리상영선생은 한국 등 해외진출로 인한 조선족젊은이들의 인재류실을 지적했다.

리상영선생은 청년들은 조류에 휘말리지 말고 자기의 발전길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56개 민족중 조선족은 국외에 동족국가가 없는 기타 민족과는 다른 민족임을 강조했다. 조선족은 해외에 조선과 한국 등 고국이 있으니 쉽게 여러가지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는 취할바가 못된다는것이 선생의 주장이다. 중국실정에 맞는 자기발전의 길을 탐색하는것이 인재발전의 경로라고 리상영선생은 지적했다.

리상영선생은 그러나 최근들어 상해에 있는 대학들에서 공부하고있는 조선족학생들이 과거보다 훨씬 많아지고있어 아주 위안스럽고 자부심이 넘친다고 기뻐했다.

12월21일 오후 3시 30분, 리상영선생은 연길공항을 통해 비행기편으로 상해에 돌아갔다. 공항을 나가면서 리상영선생은 기자에게 이번에 급급히 연길에 왔다가면서 미처 시간과 겨를이 없어 더욱 많은 연변의 모습들을 볼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지난 2002년도에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50돐경축행사기간에 해당부문의 초청으로 연변을 방문한적있는 리상영선생은 10년후에 다시 와보는 연변은 거리에 층집도 더 많아지고 높아진것 같으며 길도 넓어지고 차들도 많아진것 같다고 말했다. 상해 등 전국적으로 많은 도시들이 스모그날씨로 몸살을 앓고있지만 연길은 깨끗한 도시환경으로 마음이 상쾌해지는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며칠전 내린 백설덮힌 산야를 바라보면서 리상영선생은 마치도 어린 시절 추억을 묻어두었던 고향에 돌아온듯 감구지회가 새롭다고 부언했다.

리상영선생이 연길에 머문 시간은 겨우 1박2일, 비록 머문 시간은 매우 짧지만 중국을 감동시킨 중국조선족의 걸출인물로 조선족사회에 “금의환향”하면서 남긴 감동과 격려의 긍정적에너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중국 최첨단과학기술분야의 걸출인물로 우뚝 서기까지 리상영선생이 창조한 중국조선족의 우수한 민족적 이미지는 중국 200만 조선민족은 물론 전 세계 조선민족들에게 강한 민족적 자부심과 영광으로 영원히 기록될것이기때문이다(안상근).

래원: 인터넷흑룡강신문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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