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12)
2016년 05월 05일 15:01【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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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대적군공작과 과장
그날 밤 우리는 한 자그마한 농가집에서 세상모르고 잠들을 잘 잤다. 해가 댓발이나 올라와서야 겨우 정신들을 차렸다. 그 집주인은 환갑이 지난 로인으로 성은 막을 두자 두가요 식구는 량주뿐인데 농사를 지어서 근근히 호구를 하는 형편이였다. 강진세작은아씨는 한 1년전에 그 두 로인 내외를 수양부모로 정한터였으므로 매번 지날결에는 꼭 하루밤씩 들려서 묵군 하였다.
두 로인은 왜놈들을 미워하였다. 해도 드러내놓고 반대를 하지 못하였다. 두 로인은 신사군을 동정하였다. 해도 역시 드러내놓고 옹호를 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절대로 믿었다. 이번에 떠나오기 바로 이틀전의 일이였다. 강진세가 거리에 나가서 금계랍따위 나들이에 별로 소용이 닿지 않는 약품들을 사모으기에 내가 그런건 사서 무얼 하느냐고 묻자 그는
“우리 수양아버지네 거기는 의사도 약도 다 구경을 못하는 고장이야. 더구나 여름철에는 학질이 류행해서 여간만 고생들 하잖아. 농사철에 앓아서 일을 못하면 한해 생계가 랑패 아닌가.”라고 했다.
강진세는 진심으로 두 로인 내외를 공경하였다. 하여 그 이웃에서들도 두령감네는 수양아들을 잘 두었다고 모두 칭찬을 하였다. 순박한 두 늙은이는 우리를 정말 친자식같이 살뜰히 돌봐주었다. 그 따뜻한 보살핌에 겨워서 나는 불현듯 고국에서 외로이 지내실 우리 어머니—홀어머니의 생각이 났다.
하나밖에 없는 이 아들은 천리만리 먼 타국으로 떠나간 뒤 해가 바뀌고 또 바뀌여도 감감무소식으로 편지 한장이 없다. 생각컨대 승리의 월계수란 아마도 전사들의 어머니의 쓸쓸한 눈물로 가꾸어 자래우는것인가보지!
그날 우리는 해가 떨어지기전에 마지막 로정인 30리 평지길과 20리 산길을 무난히 답파하여 마침내 목적지인 대홍산중의 종대사령부에 당도하였다. 사령부에서 나는 여러해 갈라졌던 여해암키꺽다리와 해후상봉을 하였다. 그와도 역시 군관학교의 동창으로 무한을 철거할 때 서로 갈라졌었다. 그는 당시 신사군 대홍산정진종대에서 대적군공작과 과장으로 사업하고있었다.
군관학교시절에 한번은 “가장 거룩하신” 수령이자 교장인 특급상장 장개석이 와서 훈화를 하였는데 입을 조절하는 제동기가 고장이 났던지 마라손식훈화가 끝이 없이 길어져서 무려 2시간 40분에 달하였다. 그 바람에 적지 않은 사람이 생리적인 곤난에 부딪치게 되였는데 여해암이도 그중의 하나였다.
수령이자 교장이였던 장개석특급상장이 강당을 나가기전에는 아무도 자리를 뜨지 못하는것이 교칙이였으므로 그는 참다참다 못하여—방광이 파렬직전의 상태에 놓여있었으므로—마침내 결심을 채택하고 과감한 조치를 취하였다. 즉 허리에 찬 빨병을 앞으로 끌어당겨서 마개를 빼고 거기다 배설하기로 한것이다. 그 결과 우에서는 숙연히 훈화를 삼가듣고 아래에서는 수채가 거침새없이 페수를 방출하였다. “오줌대장”이란 그의 별명은 여기서 유래한것이다.
그 이듬해 우리 전체 대원들이 황하를 북으로 건너서 태항산항일근거지로 들어갈 때 여해암이만은 동행을 못하였다. 그의 직무를 인계받을 사람이 없어서(일어에 능통해야 하므로) 그가 팔로군으로 전입하는것을 당위원회에서 동의하지 않았기때문이다. 하여 그는 할수없이 혼자 뒤에 떨어졌다. 그런데 어찌 알았으리, 그것이 우리와의 영결로 될줄을. 그는 신사군의 한 유능한 간부로서 대홍산 풀 우거진 땅에다 그 뼈를 묻은것이다.
나는 언제나 군관학교의 교문을 나서서 일본이 무조건항복을 하던 그날까지 사이에 희생된 전우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찡해난다. 엽홍덕, 리세영, 김정희, 김영신, 서각, 손일봉, 박금철(박철동), 한청도(최철호), 왕현순(리지렬), 석정, 진광화, 김학무, 호철명, 림평, 호유백, 문명철, 진락삼, 마덕산, 김석계, 장봉상, 진일평, 장문해(박효상), 진원중 그리고 여해암키꺽다리. 그들의 이름은 마치 단쇠쪼각처럼 내 마음을 지져서 지난 30여년 동안 쉴새없이 나를 앞으로 내닫게 하였다. 그들에게도 고향이 있고 혈육이 있었다. 허나 그들은 그 모든것을 버리고 단신투쟁의 격류속에 뛰여들었다. 후에 새로 입대한 대원들중 희생된 사람의 수는 더욱 많아서 일일이 여기다 적을수도 없는 형편이다.
태항산에서 언젠가 한번은 무참하게 죽어서 피투성이가 된 전우의 시체를 구뎅이 파고 묻으면서 나는 근심스레 생각한적이 있었다. (우리들중의 과연 몇 사람이나 살아서 이 피로 얼룩진 길을 끝까지 갈것인가? 만약 불타는 분노와 필승의 신념이 없었다면 그 길고긴 나날에 내내 가시덤불속을 헤치고 걸으면서 어떻게 회심과 실망을 이겨낼수 있었겠는가.) 나는 혁명자를 마치 타고난 천재처럼, 초인간처럼, 그 언제나 락관적정신이 포만한 신적존재로 묘사하는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최소한내 전우들중에서는 그런 굉장한 인물을 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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