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15)
2016년 05월 10일 14:14【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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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왕시상"
이틀 가량 지나서의 일이다. 섬서사투리가 매우 심한 학생 하나가 동급생인 광동학생을 찾아와 무슨 일을 의논하는데 피차에 말이 통하지 않아서 동문서답에 요령부득. 옆에서 보는 사람이 다 속이 답답할 지경이였다. 그럴즈음에 동급생들중의 한 친구가 불쑥 나서서 제가 통역을 해주겠다고 자청을 하였다. 그 결과 남북 쌍방은 순조롭게 의사소통이 되여서 매우 만족들 해하였다.
그 말의 다리를 놓은 언어학의 건축기사가 소임을 마치고 막 돌아설 때였다. 한쪽옆에서 구경을 하던 문정일—“맹추”소리를 노상 입에 달고있는 동급생—이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그의 어깨를 툭 치고 말을 건늬였다.
“이봐 로민이, 저 친구들 한턱 낸다던가?”
한데 놀랍게도 그가 사용한 언어는 귀익은 우리 조선말이였다. 한즉 통역을 하던 친구도 싱그레 웃으며 대꾸를 하는데
“어째, 덧거리로 한잔 하고싶은가?”
역시 조선말이였다.
나는 만리이역에서 뜻밖에 동포들을 만난것이다! 보결생으로 뒤늦게 입학을 한 까닭에 나는 그때까지 교내사정에 전연 어두웠었다. 그런데 한 조선사람이 두 중국사람 사이의 말의 다리를 놓아준다? 참으로 신기하다느니보다는 경탄을 할 일이였다. 허나 내가 로민이를 우러러보는것 같은 눈치를 보이자 문정일이는 저를 우러러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우러러보는게 고까운지 입술을 비쭉하고
“저 친구는 광동대학에서 전학을 해와서 ‘뜌나마’는 입에 익었어. 쥐뿔도 대단할게 없단 말이야. 알았어? 이 맹추야!”
이렇게 하찮아하는 말투로 나를 보고 말하였다.
“이제부터 저 친구를 부를 때는 ‘왕시상’이라고 부르라구.”
“뜌나마”는 광동사람들이 욕할 때 쓰는 말이고 또 “왕시상”은 상해말로서 왕선생이란 뜻이다.
말을 듣고 내가 다시 그 “왕시상”의 인물을 살펴보니 아닌게아니라 눈귀가 처진 얼굴모습이 당시 저명한 만화가 엽천여(叶浅予)의 소문난 련재만화의 주인공 “왕시상”과 신통하였다. 해도 만화 아닌 이 “왕시상” 로민이는 그후에 지내보니 성정이 온순하고 상냥하고 또 겸손하였다. 단지 흠이라면 몸이 좀 너무 허약한것이였다. 후에 그는 락양에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그 이듬해인 1941년에는 팔로군에 참군하였다. 그의 본명은 장해운. 현재는 중앙군사위원회에서 사업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