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통신원 모집 통지]|시작페지 설정
고위층동향당건설인사임면부패척결국내경제조선족집거지중앙정책사회인물문화교육과학기획멀티미디어조선뉴스 한국뉴스국제뉴스종합보도 지식·자료실 리론관점 스포츠 연예관광생활포토
·8월 16일 9시까지 천진 "8.12" 폭발사고 조난자 112…  ·위건행동지 유체 북경서 화장  ·소방대원들 천진 폭발사고 현장에서 계속 수색구조,폐허속의 한줄…  ·천진 빈해창고 폭발 현장에서 또 한명의 생존자 구출(사진)  ·기자 폭발핵심구역과 안치소 탐방,"정상적 생활 조속히 복구할것…  ·중국, 일본의 일부 내각성원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불만 표시  ·중국 각지,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40여개 내외신 천진에서 빈해폭발사고 보도  ·천진 빈해폭발사고 사망자수 85명으로 증가  ·북경삼리툰에서 신혼부부 피습  ·천진폭발사고 주변해역에서 시안화나트륨 미검출   ·국가인터넷정보 판공실, 천진 폭발사고 요언정보 유포한 미니블로…  ·외교부 대변인, 일본수상 전후70주년 담화와 관련해 기자물음에…  ·천진 위험물품창고폭발 핵심구역, 또 작은 폭발 두번 일어나  ·북경위수구 모화생방퇀 핵심구역에 진입해 표본 추출(포토)  ·천진 빈해신구폭발사고 이미 56명 사망  ·천진 위험물품창고 폭발 4대 질문에 대한 상세한 해답  ·외교부, "정부는 사이버안전의 확고한 수호자"  ·국가당안국 "일본 중국 침략 전쟁범 서면 자백서 선집" 제2편…  ·섬서 산양 산사태로 64명 실종자 발생  ·천진 빈해신구 위험물 창고 폭발사고로 이미 50명 사망  ·귀주 보안 탄광 사고 조난자 12명으로 늘어  ·형주 사고기종과 동일한 4648대 에스컬레이터, 기술개진 진행…  ·흑룡강, 일본군침략죄증서류 공포  ·천안문광장 “장성”화단 모습 드러내  ·기자 길도훈려객운수전용선 체험, 길림-훈춘 구간 2시간 15분…  ·중국 국가당안국, 일본전범 자백서 제1편 "스기시타 켄조 진술…  ·천진빈해신구 위험물 창고 폭발[포토]  ·섬서성서 심야 산사태로 40여명 매몰  ·세계 중국인 화교 항일전쟁승리 70주년 기념활동 베를린에서   ·북경 장안거리 연선 8월13 일, 15일 야간 통행금지  ·중국,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새로운 증거 확보  ·국가홍수방지가뭄대처총국: 태풍 "사우델로르"로 17명 사망 5…  ·2015년 하반기 길림성 각급 기관 공무원시험 10일부터 신청…  ·태풍 “사우델로르”로 절강 백년일우의 폭우 내려, 158만명 …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좌담회 도꾜에서 열려  ·위건행 동지 서거  ·외교부, 중국은 남해 평화안정 수호하기 위해 아세안국가와 공동…  ·외교부 대변인, 중국침략전쟁 깊이 반성할것을 일본에 촉구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단주앙번 부주임, 소수민족전통체육문화는 거대…  ·안해 생얼굴 처음 본 남자,"사기죄"로 고소  ·91세 할머니, 배속에 60년전 죽은 태아가...  ·외교부, MH370여객기 잔해 확인 언급  ·말기암 5살 소녀의 동화같은 "생일,무도회, 그리고 결혼식"   ·중국 동북범 새끼 70마리 번식에 성공   ·상해 최고기온 40도에 달해   ·9.3 항전승리기념활동 맞아 천안문광장 장식작업 진행중  ·프랑스 433개 열기구 하늘로 날아올라, 세계기록 돌파  ·늦잠 자면 골절상 위험, 사람 던지는 알람침대  ·체중의 80% 줄여 새 삶 찾은 녀성 

조선족항일영웅-김근

2015년 07월 30일 16:37【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김근(金根), 1903년 조선에서 출생. 본명은 김광진(金光珍)이고 별명은 김현(金弦)이며 조선족이다. 1930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동북항일련군 제8군 3사의 지도자였다. 6살때 부모를 따라 길림에 이주했다. 1924년, 선후로 화룡현 북장동(北獐洞), 대선동(大扇洞) 소학교 교장을 담임했으며 교사라는 신분의 엄호하에 혁명활동에 참가했다. "9.18"사변후, 1932년 6월 녕안현 동경성에서 23명의 무장대오를 조직했는데 "북만공농의용군(北满工农义勇军)"이라고 불렸다. 이 무장대오의 대원들 대부분이 조선족이였다. 가을, 명령을 받고 리연록(李延禄)보충단을 따라 함께 활동하면서 녕안일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33년 봄, 녕안에서 왕청으로 이동하여 마대가툰(马大家屯)전투에 참가했다. 1934년 2월, 밀산유격대 참모장을 맡았다. 유격대는 밀산 양수하자(杨树河子)에서 훈련하다가 수적으로 5배나 많은 괴뢰군과 마주쳤는데 김근은 침착하게 대오를 이끌고 적과 6시간 대치하면서 괴뢰영장 등 괴뢰군 10여명을 격살하고 한명도 다치지 않은채 안전지역으로 대오를 이동시켰다. 1934년 10월, 동북항일동맹군 제4군 참모처장 겸 경제위원회 주임을 맡았다. 1935년 3월, 제4군 2퇀 퇀장을 맡았으며 악질지주분자가 조직한 반동자위단을 매복기습하고 자위단 단장 등 18명을 격살했다. 1936년 8월, 동북항일련군 8군 1사 정치부 주임을 맡았다. 그는 여러 방면으로 이 의용군대오에 대한 교육과 개조 사업을 진행했다.

전사들의 사상각오를 높이기 위하여 그는 시간을 짜내여 전사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반복적으로 항일부대의 성질을 해석하고 부대와 인민의 관계를 설명하여 전사들로 하여금 자신은 인민자제병이므로 반드시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을 위해 봉사하고 인민의 리익에 손해주는 일을 절대 해서는 안되며 혁명전사의 모든 행동은 지휘에 따라야 한다는것을 인식하도록 했다. 김근은 골간력량의 양성을 중시하여 당과 단 조직 건설을 강화하고 부대의 자질을 높였다. 당시 일본군은 군사"토벌"을 강화했으며 동시에 회유정책을 실시하여 항일부대를 와해시키려고 시도했다. 10월, 일본군은 가목사에서 김동한(金东汉)을 위수로 한 "치안공작반(治安工作班)" 16명을 파견하여 항일련군 제8군에서 정치투항유인활동을 벌였다. 김근은 이미 확실한 정보를 장악하고있었는데 그는 똑같은 방법으로 교묘하게 함정을 설치하여 투항을 유인하러 온 일본 괴뢰특무들을 소멸했다. 1937년 6월, 제3사 정치부 주임을 맡았는데 당시 적들이 투항유인활동을 더욱 빈번히 진행했지만 김근은 민족의 큰 뜻을 견지했고 혁명의 밝은 전도를 굳게 믿었다. 12월 3일, 흑룡강성 집현현(集贤县) 칠성라자(七星砬子) 밀영에서 3사 경위련(警卫连)의 적에게 투항한 몇명 배신자들이 그의 거처에 뛰여들었다. 배신자들의 협박, 공갈에도 그는 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투항하지 않았다. 그는 이 통일전선부대를 만회하지 못한 유감을 안고 적의 총탄에 맞아 살해당했다. 그때 그의 나이 34세였다.

래원: 인민넷 (편집: 임영화)
  [본문 프린트]  [편집에게 편지쓰기]  [E-mail추천]
주의사항:
1. 중화인민공화국 해당 법률, 법규를 준수하고 온라인 도덕을 존중하며 일체 자신의 행위로 야기된 직접적 혹은 간접적 법률책임을 안아야 한다.
2. 인민넷은 필명과 메모를 관리할 모든 권한을 소유한다.
3. 귀하가 인민넷 메모장에 발표한 언론에 대하여 인민넷은 사이트내에서 전재 또는 인용할 권리가 있다.
4. 인민넷의 관리에 대하여 이의가 있을 경우 메모장 관리자나 인민일보사 네트워크쎈터에 반영할수 있다.
메모 남기기:

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