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7)
2016년 04월 27일 14:18【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
|
움직이는 담벼락의 도움을 받아서 강병한은 거리안으로 도망쳐 들어왔다. 천행이랄 밖에 없다. 그는 숨을 곳을 찾느라고 두리번두리번하다가 맘에 드는 가게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 가게는 장사가 잘 안되는지 손님의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가게주인이 혼자 앉아서 무료하게 하품만 하고있었다. 강병한은 몸가벼이 그 가게로 뛰여들어가 주인에게 권총을 바싹 들이대고 왼손으로 호주머니에서 돈묶음—1원짜리 백장을 꺼내였다. 연후에 그 돈묶음도 역시 주인의 코앞에다 바싹 들이댄즉 주인은 죽을상이 되여서 어찌할바를 몰라하였다.
“어느걸 받겠니?”
하고 강병한은 목청을 줄여서 따짐조로 물었다.
허나 가게주인은 눈만 끔벅끔벅하였다.
“망할, 어느걸 받겠느냐 말이야? 돈을 받겠니, 총알을 받겠니?”
가게주인은 그제야 정신기가 돌아서 거의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어 그 돈묶음을 덥석 움켜잡았다. 장사아치란 본디 돈소리만 들으면 관속에 누워서도 손을 내미는 법이니까. 아무튼 그걸로 흥정은 된 셈이다. 강병한은 곧 말씨를 고쳐서
“자, 그럼 빨리 날 어디 좀 숨겨주시오!”
“예예, 이제 곧, 이제 곧 숨겨드리리다!”
주인은 일변 돈묶음을 호주머니에 쑤셔넣으며 일변 이렇게 대답을 하며 매대안으로 뛰여들어갔다. 그리고는 허리를 구푸려서 밖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움의 뚜껑을 쳐들었다.
강병한이 몸을 쪼크리고 막 움속으로 들어가려는 참에 안으로 통하는 문에다 친 포장이 렁렁 하더니 그리로 대여섯살 가량 된 사내아이 하나가 나왔다. 주인의 아들인상싶었다. 강병한은 마침 잘됐다 생각하고 얼른 두팔을 벌려서 그 아이를 가볍게 안아들었다. 주인은 겁이 나서 벌벌 떨면서도 어마지두에 그 눈치를 알아차리고
“애기야, 일없다. 안 무섭다. 아저씨가 널 고와서 그런다. 아무소리 말고 가만히 안겨있거라.”
하고 아들을 달랜 뒤 얼른 대광주리에서 바나나 두개를 꺼내서 그 손에 쥐여주었다.
그 아이는 타고난 성질이 그렇게 순했던지 보채지 않고 순순히 낯선 사나이에게 안겨서 움속으로 들어갔다. 움속에는 희미하게 5촉짜리 전구가 켜있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우에서 들여다보며
“먹어라, 어서. 끽소리 말고 가만히 있어. 우리 애기 정말 곱지.”
하고 또 한번 아들을 달랜 뒤에 살짝 움뚜껑을 덮어버렸다.
이때 거리안에는 일본군 륙전대싸이드카들이 풍우같이 몰려들었다. 그중의 어떤것은 요란한 폭음을 울리며 계속 앞으로 내닫고 또 어떤것은 거리안에 머물러섰다. 이어 왁자지껄 떠드는 고함소리와 달음박질치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허나 추격자들은 공연히 소리만 피웠지 아무것도 얻은것이 없었다. 잔디밭에서 바늘을 찾으라지. 더군다나 거기는 조차지도 아닌데 월경행동은 협정위반이라 오래 지체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하여 헛물만 켠 왜놈들은 할수없이 뒤통수를 치고 돌아섰다.
움안에서 떡받기로 횡재(닭알 한알에 1전씩 하던 세월이였으므로)를 한 가게주인은 거리안이 다시금 조용해진 뒤에도 한동안 좋이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수습하였다. 달랑이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하고 살금살금 다가가서 움뚜껑을 빠끔히 열어보았다. 강병한은 아직도 어린아이를 안은채 그속에 들어앉아 벙어리처럼 손짓으로 바깥의 동정을 물었다. 가게주인은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인젠 일없어요. 왜인들은 다 가버린걸요.”
주인은 먼저 강병한에게서 아들부터 받아안는데 작은 배속에 큼직한 바나나 두개가 들어있는 아이는 벌써 잠이 든지도 오래였다. 뒤미처 기여나온 강병한은 가게주인에게
“고맙습니다, 주인어른. 우리 또 만날 날이 있겠지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이렇게 인사말을 남기고 날랜 걸음으로 상점이 즐비한 거리로 나와서는 다시 교외쪽을 향하고 걸어갔다.
강병한은 원래 작정대로 항주에 가기로 하였다. 실상 거기밖에는 어디 달리는 찾아가서 한몸을 의지할데도 없었다. 조국마저 빼앗긴 망국노의 신세가 아닌가! 백원로자로는 목숨 하나 샀으니 하는수 있나, 두발로 터덜터덜 걸어서 갈 밖에. 그는 논틀밭틀로 서남쪽을 향하여 밤새도록 걸었다. 동틀무렵에 문득 호주머니속에 든 권총이 생각났다.
“이런걸 몸에 지니고 다니는건 부질없는짓이야.”
그는 그 권총을 떼내서 케스채로 길가 논에다 집어처넣었다.
해가 솟았다. 그가 지나는 주막거리에서는 밥짓는 연기들이 솟아올랐다. 그는 갑자기 시장기를 느꼈다. 허나 어떻거랴, 피천 한잎 없는 놈이. 그렇다고 치사스레 동냥을 하겠는가. 할수없이 그는 맹물만 마시면서 밤에 낮을 이어 꼿꼿이 항주까지 걸어갔다. 그가 조소앙네 집 문턱을 넘어서며 한 말은 겨우 한마디였다.
“조선생님, 난 배고파 죽겠어요.”
강병한이 상해에서 일을 저질렀다는 기사가 실린 신문들을 먼저 알고 벌써부터 조마조마해서 그가 나타나주기만 기다리는중이였다.
잠시후에 강병한의 앞에는 큼직한 떡시루 하나가 놓여졌는데 거기 담긴것은 모두 뜨근뜨근한 고기만두였다. 그는 렴치고 나발이고 다 제쳐놓고 대들었다. 아귀같이 먹어제끼는데 눈 깜작할 사이에 그만 바닥이 들났다. 조소앙이 옆에서 지켜보다가 근심스레 물었다.
“어떤가?”
그러나 강병한의 눈에서 주린 빛이 아직도 돋는것을 보고는 곧 고개를 돌려서 집안사람에게 분부했다.
“빨리 가서 더 가져오라게.”
강병한은 단숨에 그 많은 고기만두를 다 제꼈다. (후에 그는 나보고 말하기를 자기가 그때 먹은것이 모두 예순개라고 하였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난 그는 그 자리에 쓰러져서 이튿날저녁때까지 세상을 모르고 잤다.
허나 그후 얼마 아니하여 그들 둘은 서로 갈라져 각기 제 갈길을 가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