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7)
2016년 04월 27일 14:18【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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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교무처 소속의 포드승용차 한대가 고장으로 발동이 걸리지 않아서 나이 젊은 운전사가 골머리를 앓았다. 덮개를 떠들고 엔진 둘레를 이리 돌아보고 저리 돌아보고 아무리 애를 써도 병집을 알아낼 재간이 없었다. 이때 교무처 출입문어구에서 보초를 교대하고 나오던 장중광이 팔꿈치로 그 운전사를 밀어내고 찜부럭부리는 엔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보초장이였으므로 총은 없이 허리에 날창 하나만 찼었다. 운전사는 저를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이상 긴말할것 없다고 생각을 했던지 선뜻 자리를 내주기는 하면서도 그리 탐탁해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나는 옆에서 속으로 (야, 이것 봐라, 저놈의 이교도녀석이 주제넘게 또 자동차를 고쳐보겠단다.)고 생각하고 그 하는 꼴을 구경만 하였다. 그 이교도녀석은 허리를 구푸리고 들여다보며 한동안 꿈지럭꿈지럭하더니 엔진덮개를 도로 덮고는 제멋대로 전석에 들어가 앉아서 발동을 걸어보았다. 한데 뜻밖에도 그 엔진은 아주 순순히 가볍고도 고르롭게 소리를 내는것이였다. 장중광은 우쭐해서 차창으로 운전사를 내다보며
“또 다른 무슨 고장이 없는지 내 좀 시험해보구.”
하고는 운전사가 입을 열기도전에 최학과 나를 보고 손짓하였다.
“냉큼 올라타!”
나는 재빨리 메였던 총을 벗어서 최학(일명 리명선)에게 떠맡기고 앞좌석으로 기여들었다. 성질이 온순한 최학은 할일없이 주체궂은 장총 두자루를 끌고 뒤좌석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개미새끼 한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텅 빈 교련장을 기분 좋게 드라이브하였다. 나는 속으로는 은근히 고패를 빼면서도 지어서 시치미를 떼고 장중광에게 물었다.
“동무, 운전사 출신인가?”
“아니, 조수—견습공.”
그는 핸들을 잡고 앞을 바라보며 간단히 대답하였다.
“오 그런가, 어디서?”
“상해.”
“상해? 나도 상해서 왔는데… 어느 자동차부?”
“홍구… 후지모리.”
“후지모리?”
나는 “후지모리” 넉자를 들은 순간 피뜩 그 어느해인가 있었던 미수로 끝난 폭탄사건이 생각났다. 하여 재차 물었다.
“그럼 혹시 강병한이를 아는가? 그 폭탄을 던져서 일본놈의 대가리를 깨놓은…”
장중광은 킥 웃고 대답을 안하였다. 계속 앞만 바라보았다. 이때 뒤좌석에 앉았던 최학이가 불쑥
“너 여태 모르고있었니?”
하고 웃몸을 구푸리며 내 어깨를 툭 쳤다.
“뭘?”
의아쩍게 되물으며 내가 어깨너머로 그를 돌아본즉 최학은
“네가 말한 그 폭탄도깨비 말이야.”
하고 그는 턱으로 장중광을 가리키며
“그게 바로 저 도깨비다.”
라고 했다.
“뭐라구?”
나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저 도깨비 본이름이 강병한이야. 천주학쟁이.”
고르로운 엔진소리와 최학의 말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내 귀속으로 흘러들었다.
자동차가 교무처 문앞에 돌아와서 가벼운 브레키 거는 소리를 내며 멎어서자 장중광은 몸가벼이 먼저 뛰여내리며
“아무 일 없소. 다 정상이요.”
하고 운전사를 안심시켰다.
우리의 장중광 즉 강병한은 항일전쟁시기에 중국공산당 당원으로 되였다. 그도 태항산항일근거지에서 우리와 함께 다섯해 남짓한 동안 전투의 세례를 받았다.
장중광과 나 사이의 련신이 끊긴지도 인제 20년이 넘는다. 렬사모년(烈士暮年)에 장심불이(壮心不已)로 그의 기력이 언제까지나 정정하기를 바라마지않는다.
(다음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