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16)
2016년 05월 11일 15:19【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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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사생지간
우리는 일반적으로 스스럼없이 우리의 교관들을 대하였다. 한빙이나 석정 같은이들과는 우스개소리를 곧잘 주고받았다. 그러나 김선생 한분만은 다들 어려워하였다. 감히 그앞에서는 큰소리로 웃지도 못하였다. 김선생은 우리들—망명객테두리에서의 년장자였다. 그러나 년령의 차이도 차이지만 보다 더 주되는 원인은 선생의 성격이 워낙 근엄해서 좀체로 우스개소리를 잘하지 않는데 있었다. 나는 일생동안에 김선생이 우스개소리 하는것을 단 한번 겨우 들었을뿐인데 그 내용인즉 자신의 실패담으로서
“내가 소시적에 금강산에 가 료양을 한 일이 있었는데 가서 묵새긴 곳은 외금강에 있는 보광암이라는 암자였습니다. 그 암자는 울안 련못에다 천마리가 넘는 금잉어를 기르는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당시 나는 황달에 걸렸는데 누가 귀띔해주기를 황달에는 금잉어가 당약이라고 합디다. 그래서 나는 병을 뗄 욕심에 제잡담하고 삼태기를 얻어다가 금잉어 몇마리를 떠서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자리에서 구워먹었습니다. 보광암의 크고작은 중들이 이것을 보고는(나를 삶은 개다리를 뜯어먹는 로지심만큼 여기고) 모두 코들을 막고 달아납디다.”
어느 휴일날 나는 심운이와 함께 김선생의 그 숙소로 방문하였다. 주객이 마주앉아 조용히 담화를 하는중에 복도에서 두런두런하는 말소리와 발자국소리들이 들리더니 이내 노크하는 소리가 났다. 급기야 들어오는것을 보니 다 한솥의 밥을 먹는 동급생들인데 앞장을 선것은 역시 또 문정일이였다.
다들 자리잡아 앉은 뒤에 인사치레가 막 끝나자 문정일이가 한판 턱 차리고 나앉으며 우스개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나는 김선생앞에서 그가 그처럼 거리낌없이 지껄여대는것을 처음 보았는지라 속으로 적잖이 놀랍게 여겼다. 한데 더욱 놀라운것은 김선생의 응수하는 태도였다. 평소에는 그렇게 근엄한 선생님이 문정일의 말살에 쇠살에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소리를 듣고는 비단 미간을 찌프리지 않을뿐아니라 도리여 만면에 웃음을 띠고 좋아서 눈이 다 가늘어졌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