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실력파 청년화가 리산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다(6)
2015년 08월 12일 11:01【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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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1937년x월 x일 > |
6. 미래 예술의 길에 대하여 화가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있습니까?
오늘, 예술인생을 영위함에 있어 예술과 시장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수는 없습니다. 저는 보통 창작이 끝난후에 다시 전체적으로 작품이 예술시장에서 매겨지는 가치와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서 재량합니다. 생계문제를 해결하는것에 대한 저의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젊었을 때 다양한 직업신분을 체험하는것 례컨대 전시 책임자가 되거나 예술과 관련된 산업을 개발하거나 공공예술항목을 진행한다거나 혹은 종종 통역가가 되는것 모두 중요한 경험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학위과정을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술사와 경영학 공부인데요. 일정한 지식을 습득하고나서 저는 또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예술가가 단순히 자신의 작품만 가지고는 설명하는 힘이 부족하다는것입니다.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다양한 관점에 접근하기 위해 타인과 또 많은 집단의 힘이 필요하고 이것이 바로 제가 기획자가 된 출발점입니다. 례컨대 한국에는 매우 우수한 예술가가 많이 있습니다만 중국에서 보았던 한국전시는 통상 삼류와 다를것 없었습니다. 좀 더 많은 한국현대예술의 발전면모를 제대로 중국에 소개시키는것, 비록 이것은 개인적인 관점이지만 또한 하나의 예술공동체의 탄생이기도 하며 큰 예술의 범위에서의 또 하나의 기획양식이기도 하지요. 이 과정에서 두 나라 사 예술가 사이의 교량이 되여 서로의 립장을 리해하도록 하는것입니다. 전의 “새도 아니고 쥐도 아닌 박쥐”가 “새이기도 하고 쥐이기도 한 박쥐”로 전환이 되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사실 이 인생 개념이라는것이 너무 방대해서 미리 생각해두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저에게 하나의 특별한 상황을 가정해두기로 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세계일주를 시작합니다. 이제 제 인생의 가장 큰 꿈이 곧 실현되는 순간이지요.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가 추락해서 무인도에 착륙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거창하게 세웠던 저의 수많은 인생계획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는것은 한 순간이지요. 저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숨이 멎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그림을 그리고 또 그것을 즐기는것, 이것이 바로 무인도에서 제가 마지막으로 남길수 있는것이며 또한 제 인생에서 가장 화려하고 다채로운 흔적으로 남지 않을가 하는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