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4)
2016년 04월 22일 14:25【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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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대회가 끝이 나자 우리는 예정대로 팔로군총사령부의 무기고로 가서 신입대원들에게 노나줄 무기를 골랐다. 내가 고른 새 총은 아주 맘에 들었다. 그 무기고의 바로 이웃은 문틀만 있고 문짝이 없는 군량창고였다. 그안에 통옥수수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중간을 널빤지 두어쪽으로 간막이를 건너질렀었다. 그 상징적인 간막이의 량쪽이 다 매한가지 통옥수수인데도 거기에 세워진 패말들은 각기 달라서 하나에는 “군량”, 다른 하나에는 “사료”라고 뚜렷이 씌여있었다. 우리들—해방구의 신입생들은 제각기 두석자루씩의 총을 메고 그앞에 서서 서로 돌아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놀랍기도 하고 또 우습기도 해서였다. 해도 우리는 곧 거기서 감동적인 친절감을 느끼게 되였다. 과연 팔로군이 다르긴 하구나. 오직 고매한 품격을 지닌 인민의 군대만이 간고한 생활을 달게 받을수 있다.
같은 날 오후에 팽덕회장군은 우리를 환영하는 “연회”를 베풀었다. 네 사람앞에 고기반찬 한양푼씩, 그리고 밥은 강조밥이고 술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를 정말 놀라게 한것은 “연회”에서 사용하는 식기와 수저 따위를, 간략히 말해서 밥공기와 저가락을, 상하급을 막론하고 각자가 지참해야 하는것이였다. 국민당군대에서는 사단사령부나 려단본부 같은데는 말할것도 없고 적과의 상거가 불과 몇마장 밖에 안되는 전선의 대대부와 련대부에서도 군관들이 술과 고기에 묻혀사는것을 우리는 싫증이 나도록 보아왔다. 하여 다시한번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혁명을 하는 군대로구나 하고 가슴속깊이 느꼈다.
우리 부대는 동욕거리에서 예닐곱마장 가량 떨어진 상무촌이라는 큰 부락에 자리잡게 되였는데 그 같은 부락에 또 다른 단위 하나가 있었으니 그것은 곧 태항산 로신예술학교였다.
우리는 다 연해안일대의 대도시들에서 왔으며 그 대부분이 지식인들이였다. 한데 그날 환영대회에 나랑 함께 참가했던 그 국제주의전사들중의 일부분은 그후 태항산에서 원쑤들과 마주 싸우다가 목숨을 바쳤다. 그리고 해방전쟁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이 희생되였다. 조선전쟁에서 피흘리고 쓰러진 사람은 더우기 많다. 나도 그후 간난신고를 무수히 겪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무튼 목숨만은 여전히 붙어서 이렇게 안연히 살아있다. 한데 어쩐지 이렇게 살아있는것이 총들고 싸우다 죽어간 소박하고도 용감한 전우들에 대해서 미안한 느낌이 있다. 빚을 지고도 갚지 않은것 같은 그런 자기 가책을 느끼는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그들의 무덤을 찾아서 풀 한번 깎아본적이 없다. 하긴 그들은 대개 다 죽은 뒤에 무덤도 안 남겼다. 하기에 나는 그들을 기념하는 글을 써서 가슴속깊이 그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면서 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살아갈수 밖에 없을것 같다. 그들의 본명과 고향에 대해서도 우리들 요행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는바가 극히 적다. 그래도 우리는 반세기전에 로신이 그의 젊은 벗들의 죽음을 애도해 쓴 “망각을 위한 기념” 같은것을 써야 할것이 아닌가?
그날 저녁무렵 날씨가 여간만 시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넛이서 시내가를 거닐었다. 한데 마침 중도에서 역시 시내가를 산책하는 로신예술학교의 몇몇 녀학생들과 마주치게 되였다. 그녀들도 거지반 다 대도시에서 온것을 알고있었으므로 우리는 일부러 지꿎게 당시 널리 불리던 선성해의 가곡중에서 한대목을 골라서 먼산을 바라보며 불렀다—“안해는 남편을 전선으로 떠나보내네…” 한데 어찌 알았으리, 그 몇몇 고대의 녀걸 아닌 20세기의 화목란(花木兰)들이 꼬물도 수집어하는 티가 없이 서로 눈짓을 하더니 아주 당당하게 “어머니는 아들더러 일본놈을 물리치라시네…” 하고 맞불러댈줄을. 우리는 손을 바짝 들었다. 과시 그녀들은 우리 “신입생”들의 선배임이 틀림없었다. 허나 지금 그녀들 또한 어디 있는지 찾을길 묘연하구나.
우리의 태항산에서의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다음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