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4)
2016년 04월 22일 14:25【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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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에서의 태평한 나날이란 결국 살륙과 살륙 사이의 덧없는 쉴참이였다. 어느날 오전, 적의 진지뒤쪽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커다란 기구 하나가 서서히 떠오르는것이 눈에 띄였다. 그것은 적군의 포병관측소였다. 미구에 하늘땅을 뒤흔드는듯한 무더기포성과 함께 무수한 포탄들이 날카롭게 공기를 헤가르며 날아와서 태평한 나날—덧없는 쉴참은 박산이 나버렸다.
일찌기 태아장회전에서 적의 정예부대인 이다가끼, 이소야 두 사단에 괴멸적인 타격을 줌으로써 명성을 떨친바 있는 광서부대의 통수 리장군이 이번에는 어쩐 일로 지휘가 신통치를 못해서 그만 망신스러운 패전을 하고말았다.
사령부 군사회의에서 참모부성원들과 쏘련고문들이 작전지도를 앞에 놓고 한동안 분주하였다. 당시 각 전구에는 대개 다 외국인고문들이 있었다. 한데 그 고문들이 회의실문밖으로 사라지기가 무섭게 리장군은 너희가 군사는 알아도 정치는 모른다고 뇌까리며 작전지도우에다 고문들이 방금 꽂아놓은 몇몇 부대번호기들을 제 맘대로 이리저리 바꿔꽂아놓았다.
그 결과 적군의 주공지점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방계부대들이 곤두박질쳐와서 터진 구멍을 막아야만 하였다. 그와 반대로 리장군의 직계부대들은 험한 모퉁이에서 멀리 빼돌린 까닭에 불벼락을 안 맞게 되였다.
이러한 내막은 당시 장관사령부에서《참고소식》을 맡아서 편집하던 심운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심운은 상해무선전신학교 졸업생이다.
정치와 군사가 모순이 생기는통에 방어선의 중앙은 돌파를 당하고 좌우량익도 따라서 붕괴될 지경에 이르렀다. 한데 어찌된 셈판인지 적은 얼마 아니하여 곧 출격했던 부대들을 도로 다 걷어들였다. 하여 전선은 다시금 원래의 대치상태로 되돌아갔다.
처음에 우리가 적에게 밀려서 퇴각을 할 때 패군의 정형은 뒤죽박죽으로 혼란하였다. 기동성이 강한 적기병대한테 퇴로를 차단당할 념려가 있는데다가 밤만 되면 지방무장들이 자위를 하느라고 불문곡직하고 함부로 총질을 하는통에 하루밤사이에도 몇차례씩 놀라나서 거의 초목이 다 적병으로 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일행도 지칠대로 지쳐서 어느 길가 자그마한 잡목림속에서 밤을 지내게 되였다. 김학무는 맨먼저 군복외투의 깃을 단단히 여미고 잔디밭에 드러누워 잘 차비를 하며 롱담조로 말하는것이였다.
“눕는 길로 곧 잠이 드는것 바보가 아니면 영웅이야.”
나는 비록 극도로 지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누워서 한동안은 좀체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데 정말 아닌게아니라 내곁에 누운 김학무는 숨결도 고르롭게 이미 꿈나라려행을 하고있었다. 이튿날 꼭두새벽 날도 채 밝기전에 우리는 일어나 부지런히 길떠날 차비들을 하였다. 한데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일행중의 한 친구—호유백이가 손련중부대 병사의 시체하고 하루밤을 같이 잔것을 알게 되였다. 우리는 중구난방으로 재수가 있겠다느니, 상대자를 잘 골랐다느니, 백살 사는건 인제 떼놓은 당상이라느니 하고 그를 놀려주었다…(해도 그 경상도친구 호유백은 몇해후 태항산에서 전투중 적의 포위망을 뚫고 나올수 없게 되였을 때, 적들이 여라문발자국앞에까지 와서 항복을 권유하자 픽 웃고 마지막 한방의 권총탄알로 제 관자노리를 쏴뚫고 자결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