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17)
2016년 05월 12일 15:33【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7. 맹진나루
1941년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올무렵 우리는 황하를 북으로 건너서 항일의 봉화가 타오르는 태항산으로 들어갈 차비들을 하였다. 그 당시 우리의 세계관은 극히 단순해서 무릇 항일하는 사람은 다 영웅호걸이요, 안하는 년놈은 다 개돼지였다.
우리는 일찌기 아무도 그 출중하지 못한 문정일이가 전원이 북상을 할 때 관건적역할을 놀줄은 예측하지를 못했었다. 시대가 영웅을 낳는지, 아니면 질풍이 불어야 억센 풀을 아는지 아무튼 죽고사는 문제가 걸려있는 고비판에 그는 일약 판국을 주름잡는 풍운아로 되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홀쪽한 얼굴도 금빛의 후광이 엇비낀듯 생기가 발랄해보였다. 그는 조선의용대 두개 지대와 여러 분대 전원을 저까지 넣어서 네패로 나눠가지고 띠염띠염 떠나보내는데 여섯달에 걸쳐서 한 사람의 손실도 없이 안전하게 다 태항산항일근거지로 이동시켰다.
각 전장의 조선의용대가 홀연히 온데 간데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가 얼마후에 또 홀연히 태항산 땅밑에서 솟아났을 때 국민당특무들의 놀람은 어떠했을가 감히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 제2지대의 선견대는 모두 열 사람으로 편성되였는데 령솔자는 김학무였다. 대원은 윤곡흠, 리조, 박문, 림평, 왕극강(김창규), 심운, 정영과 나 그리고 또 한 사람은 “큰애기”라는 별명을 가진 미남자 황민(황민은 멋쟁이로서 비당원)이였다.
출발을 한시간 앞두고 불시로 통지를 받았는데 통지를 받는 길로 우리는 지체없이 행장들을 수습하였다. 전쟁판에서 항시 대기태세를 갖추고있는 군인들이 꾸물거릴게 무에 있는가. 한데 막상 출발을 하려고본즉 사람 하나가 모자랐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었다. 그 신비스럽게 돌연히 자취를 감춰버린 사람은 다름아닌 황민 “큰애기”였다. 우리는 모두 당황해났다. 그것은 참으로 례상일이 아니였다. 큰 방축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는 말이 있잖은가!
우리를 바래려고 장관사령부에서 총총히 달려온 문정일이는 얼굴이 해쓱해져서 한동안 말을 못하였다. 의심할나위 없이 그것은 배반도주였기때문이다. 국민당의 헌병대가 우리 영사에서 너덧마장 밖에 안되는 거리에 있으니 걸어서 갔다온대도 한시간이 채 안 걸린다. 그러나 우리는? 화살은 이미 시위에 먹혀들었으니 아니 쏠래야 아니 쏠수 없는 형편이다. 우리는 모두 속으로는 몹시 떨떠름하면서도 칼 물고 뜀뛰기로 결연히 길들을 떠나지 않을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황민이는 생활이 간고한 해방구로 갈 생각이 없어서 출발명령을 받는 길로 곧 영사를 벗어나서 정거장으로 달려가 첫차를 잡아타고 서안에 주류하는 우익군대—한국광복군으로 도망을 쳤었다. 다행히도 그는 우리의 행동계획을 아무에게도 루설하지는 않았다.
급기야 우리 선견대일행 아홉 사람이 맹진나루에 당도해본즉 벌써부터 군대에 징용된 황하의 크고작은 범선들은 전부 초만원을 이루어서 말, 사람과 군용물자가 한군데 붐비여 복대기를 치고있었다. 군사관리당국이 총대에만 의거해서 유지하는 질서가 뒤죽박죽임은 대번에 알리였다. 하긴 뒤문거래가 성행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혼잡한 국면이 더더구나 혼잡한지도 모를 일이였다. 아무튼 판국이 그런 까닭에 우리는 예상외로 거기서 두시간 이상이나 지체를 하게 되여 모두들 조바심이 나서 왼새끼를 꼬았다. 령솔자인 김학무가 총지휘관을 찾아서 반나절이나 교섭을 하였으나 결국은 요령부득으로 나루배는 여전히 차례지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속을 지글지글 끓이고있을즈음에 홀지에 구성이 나타났다.—문정일이가 온것이다.
문정일이는 우리를 떠나보내놓고나서도 도무지 마음이 안 놓여서 안절부절을 못하다가 마침내 마음을 고쳐먹고 부랴부랴 뒤쫓아왔던것이다. 문정일이가 오자마자 옭혔던 매듭은 손을 대기가 무섭게 풀려나갔다. 그는 제 군복앞가슴에 달린 제1전구 장관사령부의 출입증을 가지고 어리석은 국민당 관원들을 혼쌀냈던것이다.
우리를 태운 배가 배줄을 감은 뒤에 문정일이는 혼자서 꼼짝않고 방축우에 서서 차차 멀어가는 우리를 점도록 눈으로 바래였다. 나는 탁류가 끓어번지는 황하의 강물을 엇비슥이 건너가며 뒤뚝거리는 백석실이 배우에서 차차 작아지는 그의 호리호리한 몸매를 내처 바라보았다. 그러는중에 나는 홀제 가슴속에 뜨거운 그 무엇이 북받치는것을 느꼈다.—그것은 동지에 대한 나의 진지하고도 은근한 우정이였다.
(다음회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