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19)
2016년 05월 16일 14:48【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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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헛소동
어느날 이른새벽 기상을 한 직후에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우리가 주류하는 부락이 국민당군대에게 철통같이 포위를 당한것이다. 부락을 둘러싼 병사들의 간격이 한메터씩이나 될가, 팔을 벌리면 서로 손을 맞잡을만한 거리였다. 물샐틈 없다는 형용은 아마 이런걸 두고 하는가싶었다. 우리는 놀라서 서로 돌아보고 또 제각기 의혹을 품었다. 바람이 어디로 새여나간게 아닌가? 그렇다면 우선 짓쳐나갈 준비부터 해야 하잖겠니? 우리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망설이고있을즈음에 홀제 포위한 부대의 한 중대장이 뒤에 전령병 하나를 딸리고 우리쪽으로 걸어왔다. 그는 가까이 오자
“어느분이 령솔하는 장관이십니까?”
하고 깍듯이 물었다.
제1지대 지대장 박효상이 두걸음 앞으로 나섰다.(박효상은 중앙군관학교 제8기 졸업생이며 그의 안해 리수운은 용감한 중국녀자이다.) 피차에 거수례를 나눈 다음 그 중대장은 미안스러워하는 어투로
“이거 대단히 미안하게 됐습니다, 여러분을 놀라시게 해서. 간밤에 이 부락에 탈옥을 한 강도집단이 잠복했다는 소식이 들어와서 놈들이 튈가봐 밤중에 불시로 상급의 명령을 받들고 이렇게…”
알고보니 일장의 헛소동이라. 박효상은 속으로는 은근히 한시름을 덜면서도 겉으로는 아닌보살하고
“천만에, 천만에. 여러분 수고들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도 한팔 도와드리면 어떨가요?”
“아니, 아니.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용의만은 고맙습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안녕히!”
그 중대장이 되돌아가버리자 “구두솔”이라는 별명을 가진 장평상(장평산)이가 싱글거리며《손자병법》의 한 대목인 “싸우지 않고 적병을 굴복시키는것이 상수중의 상수이니라.”를 외워서 사람들을 모두 웃겼다. 장평상의 별명은 내가 지었는데 그것은 나이 스무나문살 밖에 안된 그가 수염투성이 털보였기때문이다.
한 사흘 지나서 락양전구사령부에 전보를 칠 일이 생겨서 심운이가 방병훈의 집단군사령부로 가는데 나도 따라가게 되였다. 우리가 사령부근처에까지 갔을 때 홀제 서남방향에서 국민당군대의 소형단엽수송기 한대가 날아오더니 사령부에서 오륙마장 가량 떨어진 간이비행장에 가 내렸다. 알고보니 군의 월비 즉 현금을 싣고 온 비행기라는데 그밖에 대립이가 파견한 특무공작인원따위를 싣고 왔기도 쉽다.
우리는 통신중대에서 찰랭자 랭가성 가진 대위 중대장 하나를 알게 되였는데 그가 비록 성은 랭가라도 사람은 결코 차지 않아서 여간만 따뜻하게 우리를 접대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거기서 신기한 무전용발전기 하나를 보았는데 그 발전기에는 두개의 파란 뼁끼칠을 한 금속손잡이가 달려있어서 송수신이 다 끝날 때까지 병사 둘이 마주앉아 뽀트의 노를 젓듯이 계속 그것을 저어야 하였다.
우리는 얼마 오래지 않아 문정일이의 답전을 받았다. 하여 우리의 박지대장은 절름발이 방총사령을 가서 만나보아야 할 일이 생겼다. 겉으로는 우리가 장차 전개할 대적군공작을 어떻게 그들의 군사행동에 배합시킬가를 상론하러 간다고 내세웠지만 실상은 방가를 직접 만나 드레질을 해서 부대의 허실을 파악하여 우리가 봉쇄선을 돌파하고 해방구로 넘어들어가는데 유리한 조건을 창조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한데 그런 절충을 하자면 그에 상응한 틀도 차리고 또 위의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박지대장은 여럿 총중에서 두 사람을 즉 나하고 진국환을 골라뽑아서 림시로 나는 부관으로 꾸미고 진국환(진국화)은 호위병으로 꾸몄다.(진국환은 성질이 유순하고 또 천진란만하여 전우들의 굄을 받았다. 그는 고아로 자랐으며 역시 나의 군관학교 동창생이다. 해방후 그는 해군부대의 한 지휘관으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