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19)
2016년 05월 16일 14:48【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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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총사령과 박지대장 두 주객이 한훤수작을 마친 뒤에 차를 드리고 또 담배를 권하는것까지 보고나서 나는 외실로 물러나왔다. 외실에서 기다리는 방병훈의 부관이 우리들더러 어서 앉으라고 자리를 권하였으나 진국환은 제 “신분”을 고려하여 감히 앉지 못하고 그냥 서있었다. 나는 속으로 재미나게 웃으며 권하는 의자에 버젓이 걸앉았다.—역시 “부관”노릇을 하는게 득이야. 그러나 영국궐련 “트리 캘슬”을 권하는것만은 사절하고 받지 않았다. 피울줄 모르는 담배를 피우다가 사레라도 걸리면 망신이겠기에.
한참 앉아 대령하다가 나는 잠간 밖에 나갔다 들어와야 할 필요를 느꼈다. 주인인 진짜부관이 어디를 가시려느냐고 물어서 그저 잠간 좀 볼일이 있다고 나 이 가짜부관이 대답한즉 그는 얼른 의자에서 일어나며 제가 안내하겠다고 극진한 호의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럴것 없다, 제가 찾을수 있다고 사양하고 혼자서 복도로 나왔다.
내가 길을 잘못 든것 같아서 머뭇거리고있을즈음에 홀제 오른손편 방문에 드리운 흰 포장이 바람에 펄렁하였다. 그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그었다. 눈결에 그 방안에 사람 셋이 앉아있는것을 보았는데 그중 하나는 안경을 쓴 양복쟁이고 나머지 둘은 군복을 차려입은 일본장교였다! 비록 눈결에 피뜩 본것이긴 하지만 새매같이 날카로운 내 눈초리는 절대로 못 속인다. 나는 너무 몹시 놀라는통에 나오려던 오줌이 도로 다 들어가버려서 다시는 밖에 잠간 나갔다 들어올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나는 얼른 발길을 돌이켜 되돌아 들어오는 길로 방안에 여전히 앉지 못하고 서있는 진국환에게 눈짓으로 군호를 하였다. 진국환은 알아차리고 재빠르게 경계태세를 갖추며 긴장해서 허리에 찬 권총을 더듬어보았다. 나는 아닌보살하고 앉아서 책상우의 그림책을 뒤적거리며 머리속으로는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가지가지의 추측을 륜전기같이 급속도로 돌렸다.
(이게 도대체 웬 일일가? 있을수 없는 일, 절대로 있을수 없는 일!)
이윽고 후보매국노 방절름발이가 일어나서 손님을 바래는데 음흉하고 교활하기짝이 없는 놈이 말은 또 번지레하게 잘하여 싱글벙글 웃으며 나까지 한바탕 치살렸다.
“박대장, 저 젊은 량반 인물이 준수하구먼요.” 하고는 나를 보고 능청부렸다.
“스물몇이지?”
영사로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방금 목격한 사실을 박효상에게 반영하였다. 진국환은 옆에서 따라오다가 내가 하는 말을 듣고는 너무도 놀라와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한참만에야 부르짖듯
“그런 일이 있었는가! 난 또 무슨…”
하고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꼬락서닐 보아하니 방가절름발이가 아무래도 반변을 할 모양이군.”
한동안 걷다가 박효상은 비로소 이렇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리고 또 동안 뜨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자가 지금 우릴 돌볼 겨를이 없을테니 우리한텐 차라리 잘된 셈이지.”
아니나다를가 방병훈이는 그후의 력사가 증명하듯이 반변을 하여 제 집단군 전원을 끌고 적에게로 넘어가 수치스러운 매국노로 되였다.
박효상의 나이는 당시 서른대여섯 밖에 안되였지만 그런 일에 들어서 그는 남다른 혜안을 구비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