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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백인50]인민이 인정하는 훌륭한 검찰관이 될터

-연변주인민검찰원 김광진검찰장

2013년 09월 03일 08:51【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김광진검찰장이 부임한 몇년래 연변의 검찰사업은 주목할만한 발전을 가져왔다. 어떻게 말하면 지금이 연변의 검찰대오건설이 가장 잘 되고있는 시기이고 지도부건설이 가장 잘된 최적의 시기이며 상급의 인정정도가 가장 높은 시기이자 간부 및 사법경찰들의 사기가 가장 왕성한 시기라고 말할수 있다.》

김광진을 평가할라 치면 그와 함께 검찰사업에 종사해온 검찰일군들은 이러한 평가들로 그와 함께 사업해오면서 느낀 체험과 소감들을 털어놓는다.

1956년 2월 출생한 김광진은 1978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 연변대학법학석사학위, 1975년부터 1979년까지 군부대 복무, 1979년부터 2006년까지는 공안사업에 종사, 2006년부터 현재까지 검찰사업에 종사. 김광진의 경력을 분야별로 요약하면 아주 간단했다. 하지만 이 간단한 경럭가운데는 정의로운 경찰인생, 검찰인생이 동반되여있고 수많은 영예들도 뒤따르고 있다.

김광진은 선후로 전국로력모범, 전국 《인민만족공무원》으로 평의됐고 전국 《5.1》로력훈장을 수여받았으며 공안부 1급영웅모범, 전국 우수인민경찰, 전국 공안계통 근정렴정 선진개인, 제1회 전국 《가장 사랑스러운 10대 인민경찰》로 선정되였으며 선후로 1등공 3차, 2등공 1차, 3등공 4차 기입받았다. 경찰에서 검찰로 역할이 바뀐 뒤에도 그는 《자랑찬 길림의 인물》, 전국 《효친경로(孝亲敬老)의 별》 등 수많은 영예들을 받아안았다. 길림성 로력모범, 우수공무원, 10대 우수경찰, 10대 우수공산당원 기준병 등 이러한 영예들은 헤아릴수 없이 많다.

김광진의 마음속엔 항상 《백성》이라는 두 글자가 있었다

1979년 경찰사업에 몸담고 보통경찰로부터 여러 현, 시 공안국장직무를 감당하는 장장 27년동안 김광진은 항상 백성들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김광진의 27년 경찰인생에는 《백성들의 훌륭한 아들이 되련다》는 그의 다짐이 항상 동반되여있다.

공안사업에 종사하는 27년간, 특히 공안국장으로 있는 기간 김광진은 2만 2000여건에 달하는 각종 형사사건을 해명하였는데 그중 중대, 특대 형사사건만 1500여건에 달한다. 특히 백성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치를 떨게 했던 사회악세력을 뿌리채 뽑아버림으로써 백성들의 마음을 읽고 헤아리는 경찰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백성들의 훌륭한 아들이 되련다》-이것이 공안사업을 하면서 김광진이 한 다짐이였다면 2006년 연변주인민검찰원 검찰장으로 임직하면서 《백성들의 믿음직한 수호신이 되련다》는것이 그의 새로운 인생좌우명으로 자리잡았다.

김광진이 검찰장으로 부임한지 얼마 안되였을 때다. 당시 검찰원에서는 오랜 신소인원 김씨 할머니 때문에 적지 않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김할머니의 아들은 지난세기 90년대 한차례 무리싸움에서 목숨을 잃었는데 김할머니는 그중 한 피고인의 판결에 불만을 품고 성에도 북경에도 수차 신소하러 다녔다. 심지어 길림성고급인민법원의 간판을 떼여 메고 성인대를 찾은적도 있었고 성급지도일군의 차를 가로막은적도 수차 있었으며 근 넉달동안 검찰원을 집처럼 삼고 주식을 해결하기도 했으며 3500여장의 전단지를 소지하고 북경에 가서 《분신》할 생각도 했다. 사실여부를 위해 김광진이 사건을 재차 분석해보니 판결하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건이였다. 하지만 김광진은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신소하러 온 할머니를 모시고 검찰원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대접하기도 하고 아들이 사망한 뒤 거주할곳도 없다는 할머니의 말을 듣자 할머니의 고향인 왕청현정부에 련결해 조건이 좋은 양로원에 배치하도록 부탁하는 등 진정으로 할머니의 마음을 돌려세웠다.

어느해 화룡림업국의 몇몇 로동자들이 그의 사무실을 찾았는데 들어오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원래 이들 당사자의 형제가 체포된지 사흘만에 원인도 모르게 죽었는데 이들은 화룡시공안국 국장으로 있던 김광진이 진실을 밝혀내리라 믿고 찾아왔던 것이다. 결국 김광진은 부검 등 재조사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고 사건당사자들이 법적제재를 받게 했다.

《인민의 검찰관으로서 권위나 부귀를 수호하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며 백성을 위해 법을 집행하는 검찰관이 백성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어떻게 살겠는가》는 김광진검찰장이 항상 수하 검찰일군들을 단속하는 말이다.

《법률 앞에서는 사람마다 평등하다》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다

김광진이 연변주 검찰원 검찰장으로 부임한지 얼마 안되여 누군가가 실명으로 당시 연길시검찰원 검찰장으로 있던 김광철의 탐오 및 회뢰, 도박 등 문제를 제보했다. 초보적인 조사를 거쳐 문제가 확실히 존재함을 확인한 김광진검찰장은 깊이 있는 조사에 들어갔고 조사할수록 문제가 심각함을 발견했다. 그의 회보를 들은 길림성검찰원에서는 금방 부임한 그의 사정을 고려하여 다른 지역에 넘겨 처리할것을 건의했다.

당시 누구도 금방 부임한 김광진검찰장이 특히나 상대 역시 검찰장인데 사회의 악세력을 쳐부수던 공안국장시절의 패기대로 사건을 처리할지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상대가 어떠하든 이러한 사람은 반드시 제거되여야 한다는것이 당시 김광진검찰장의 생각이였다. 연변주당위의 지지하에 김광진은 여러 측면에서 밀려드는 거대한 압력을 헤쳐나가며 사건을 처리함으로써 사건당사자가 마땅한 법적 제재를 받게 했다.

검찰장으로 임명된 이래 그는 선후로 중국석유화학그룹 동북석유국 부국장 계유권, 원 연길시 시장 차종일, 원 훈춘시법원 원장 왕해기 등 일련의 부패 분자들을 조사해냈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김광진이 검찰장으로 부임한 이래 500여건의 큰 사건,중요사건들을 립건조사처리하였는데 그 가운데는 현처급 간부가 근 40명, 청급 간부가 5명 포함되고 사건관련금액이 100만원-500만원인 사건이 근 30건, 500만원이상 되는 사건이 7건 되며 국가를 위해 2억원에 달하는 경제손실을 만회했다.

7년이래 연변주검찰원의 반탐오회뢰, 반독직침권사업은 줄곧 길림성의 앞자리를 차지하였으며 그러한 사업을 인정받아 연변주검찰원은 련속 3차 길림성 반탐오사업 우수단위로 평의되고 련속 2차 길림성 검찰기관 반탐오부문 사건취급 선진단위로 평의, 선진진보상을 수여받았으며 연변주검찰원 반탐오회뢰국은 최고인민검찰원으로부터 《전국10대 우수반독직 침권 검찰처》로 평의됐다.

인간은 《효》를 잊어서는 안된다

부모한테 있어서 김광진은 가정의 기둥이였고 선생님의 마음속에는 평생의 자랑이였으며 로간부들이 볼 때 믿음직한 항구와도 같았고 백성들이 볼 때 정의의 화신이였다.

2012년 김광진은 국가로령사업판공실, 민정부, 교육부, 국가방송영화텔레비죤사업총국, 공청단중앙, 전국부련회, 중국새일대관심위원회 등 7개 부(위원회)가 공동으로 수여하는 《전국 효친경로의 별》 영예칭호를 수여받았다. 당시 길림성에서 이 칭호를 수여받은 사람은 김광진 한사람뿐이였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그 어떠한 칭찬보다 더 값진 칭찬은 바로 그 사람의 인간성과 품질 즉 인격과 품행에 대한 칭찬이다. 김광진 역시 이 영예를 받아안은 뒤 《이는 국가에서 나의 인격과 품행에 대한 긍정으로서 평생 수많은 영예를 받아안았지만 이 영예가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진다》며 그 어느때보다도 기뻐했다.

사실 김광진검찰장은 공안국에서 사업할 때나 검찰원에 전근하여 검찰장으로 사업할 때나 항상 《효도, 친근, 경로》를 잊지 않았다.

김광진은 훌륭한 가정에서 태여나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연변주당위 부서기까지 지낸분이였고 어머니는 중국인민은행 훈춘지행 행장, 연길시보험공사 경리 등 직을 지낸 당원이였다. 어릴적부터 항상 부모의 훌륭한 교양과 교육을 받아온만큼, 그리고 부모들의 훌륭한 본을 따라배워온 그였던만큼 그 역시 훌륭한 인성을 키우며 자라났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김광진은 아버지의 부탁에 따라 빈소를 차리지 않았고 추도회도 열지 않았으며 조의금도 받지 않았다. 인정 때문에 거절하기 힘들어 받은 돈은 훗날 당비로 납부했다. 김광진은 부모의 뜻을 존중하고 따르는것은 자식으로서의 효도임을 잊지 않았던것이다.

량친 부모가 돌아간뒤 그한테는 훈춘에 계시는 장모 한분만 남게 되였다. 언젠가 멀리 한국에 있는 딸애로부터 외할머니가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쳤다는 전화를 받게 되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김광진은 즉시 훈춘으로 달려가 장모를 찾아뵙고는 보살펴줄 사람까지 부탁한후 다시 연길로 돌아와 공무에 지장받지 않게 했다.

김광진의 효도는 가족뿐만 아니라 자기를 가르쳐준 선생님들한테, 오랜 로간부들한테도 그대로 이어졌다.

김광진검찰장한테는 훈춘2중에서 공부할 때의 담임선생님이 계셨다. 2005년 공안부로부터 1급영웅모범칭호를 수여받은 뒤 김광진은 연길에 음식석상을 마련하여 당시의 담임선생님을 비롯한 훈춘2중의 20여명 선생님들을 초대하였다. 김광진검찰장의 말을 빈다면 오늘과 같은 영예는 바로 선생님들의 교육과 양성이 있었기때문이며 선생님들의 은혜는 평생 잊을수 없다는것이다.

김광진검찰장한테는 리정엽이라는 중학교시기와 대학교시기의 축구지도가 있었는데 언제 어디서나 수십년간 리정엽지도를 잊은적 없다. 매년 설명절이나 교사절, 로인절이면 꼭꼭 찾아뵙거나 생일을 쇠여드렸고 안도현공안국 국장으로 있을 때 받은 텔레비죤도 그대로 선생님의 집으로 가져갔다.

로간부들을 대함에 있어서 세가지는 시종일관해야 한다

안도현공안국 국장, 화룡현공안국 국장, 연길시공안국 국장, 연변주검찰원 검찰장┅ 어디서 사업하든 리퇴직 로간부, 오랜 동지에 대한 김광진의 태도는 시종일관했다.

연변주검찰원 검찰장으로 임직한 김광진은 《로동지들은 검찰사업의 정초자로서 이들의 어제가 없었다면 우리의 오늘이 있을수 없으며 로동지들의 오늘은 곧바로 우리들의 래일이다》며 《항상 부모한테 효도하는 심정으로 로동지들을 관심하고 사랑해야 하며》 《단위에서 로인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집에서 부모한테 효도하지 않는다》는 말로 항상 검찰일군들을 가르쳐오고 실천해왔다.

지난 2008년 김광진은 검찰원 중층이상 간부들이 참가한 회의를 열고 로간부, 로동지들을 대함에 있어서 《정치상 시종일관하게 대하고 생활상 시종일관하게 관심하며 복지상 시종일관하게 향수받도록 한다》는 《세가지 시종일관》방침과 《로간부들의 력사공적과 거대한 공헌을 잊어서는 안되고 로간부들의 우량한 전통과 숭고한 정신을 잊어서는 안되며 로간부들을 존중하고 관심하고 사랑하는 정책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잊지말아야 할 세가지》 방침을 확정하고 실제사업에서 이를 실천해나갔다.

우선 정치부에 로간부처를 신설하고 전문인원을 배치해 로령사업을 틀어쥐게 했으며 사업가운데서 매년 설, 중양절, 로인절이면 반드시 로동지들을 위문하고 해마다 로동지들 및 반려의 건강검진을 실시하며 생일 때 반드시 생일케익과 함께 꽃묶음을 갖고 축복을 전달하고 해마다 로동지들이 참가하는 련환 및 운동회를 가지고 해마다 로인들의 관광 혹은 야영을 조직하며 주택, 차량, 복지 등에서 재직간부와 일시동인하고 우선 배치하며┅ 등등 《몇가지 반드시》를 실시해 나갔다. 로간부들의 리퇴직후 생활을 풍부히 하기 위해 로간부활동실을 새로 짓고 탁구, 장기, 당구 등 활동실과 열람실, 사무실을 마련하여 에어콘, 텔레비죤, 샤워설비 등 시설을 장만했다.

연변주검찰원의 로간부사업은 상급의 인정을 받았고 로간부처는 《길림성 리퇴직간부 역할발휘 선봉초소》칭호를 수여받았고 연변주검찰원은 전국 검찰기관으로는 유일하게 국가 7개 부(위원회)로부터 《전국경로모범단위》 칭호를 수여받았다.

김광진검찰장은 검찰원에서만 로간부사업을 중시한것이 아니다. 일찍 화룡시공안국에서 사업할 때 그처럼 어려운 여건에서 가장 큰 사무실을 내여 로간부활동실을 마련하고 해마다 로간부 및 가족들로 봄철 들놀이를 조직했으며 연길시에서 사업할 때에는 사회구역에 전이된 로경찰들의 서류를 다시 공안국에 락착하고 《로경찰클럽》을 세워 로경찰들이 즐겁게 만년을 보내도록 했다.

안도에서 사업할 때 붉은등을 무시하고 사거리를 지나는 로인의 귀뺨을 때린 경찰을 본격 처리하고 자신이 텔레비죤 방송에 나서서 안도현인민들에게 검토한 사실은 안도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이 불구자로 된 사실을 알고 1만 3천여원에 달하는 휠체어를 선물한 사실, 안도현정부로부터 얻은 모금주택을 전우한테 양도한 일, 공안부 1급영웅모범으로 되여 받은 상금 5만원을 전부 그와 함께 어깨겯고 일해왔던 기층공안전선 전우들과 함께 나눈 사실, 신질환 아들, 며느리를 둔 돈화시 액목진 줄다허촌의 한 로당원의 어려운 형편을 알고 집을 지어준 사례, 안해를 살해한 남편이 사형판결을 받고 집에는 10살정도의 손자손녀와 할머니만 남았을 때 이 가정을 위해 집을 지어주고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업에 참가할 때까지 학잡비와 생활비를 감당한 사연 ┅ 사실은 웅변보다 낫다는 말은 아마도 김광진과 같은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인듯 싶다.

《검찰관은 우선 사회가 공인하는 훌륭한 사람, 공정한 사람, 신용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의 신임을 얻을수 있다.》

김광진은 이를 항상 강조하고 스스로 실천해왔다.

제1회 전국《가장 사랑스러운 10대 인민경찰》칭호를 수여받은 김광진.
래원: 길림신문 (편집: 김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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