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3)
2016년 04월 21일 15:09【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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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대대장의 근무병이 한손으로 궁둥이우에 매달린 모젤권총을 누르며 달아오더니 대대장이 우리를 곧 청해들이란다고 전갈하였다. 대대장은 우리를 보자 상냥한 말씨로 알려주는것이였다.
“방금 련대장께서 친히 전화를 걸어오셨는데 련대부에 손님이 오셨다고 여러분더러 오셔서 자리를 좀 같이해주십시다는 취지였습니다.”
“어떤 손님인데요?”
김학무가 물은즉
“전한선생의 부인 안아녀사께서《진중일보》의 녀기자분과 함께 시찰을 오셨는데… 장관사령부에서 내려오셨답니다.”
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경황이 없어서 갈 생각이 꼬물도 없었으나 김학무가 한사코 잡아끄는 바람에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한번 실수는 병가의 상사란걸 그래 몰라서 그러나? 사람의 속이 왜 그렇게 옹졸해? 대대장은 벌써 그 일을 다 잊어버린지가 옛날인데…”
하고 김학무는 너름새를 놓는것이였다.
“임자 같은 옹생원을 안 모시고 가서야 우리가 어떻게 손님접대를 제대로 하겠나, 안 그래?”
환영연회에는 녀자손님 두분외에도 또 녀자가 한분이 있었는데 그가 곧 김위라는 조선녀성으로서 우리와 함께 와서 참석한 조선의용대 대원이였다. 김위는 영화배우출신인데 저명한 영화배우 김염의 녀동생이다. 당시 그녀는 스물다섯살이였으며 후에 태항산에서 다섯해 동안 전투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의 미더운 전우로 되였다. 한데 그때 연회석상에서 무슨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는지는 전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아니 난대도 무방하겠지, 본문하고 별 상관 없는 내용을 서술하느라고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되니까.
연회를 마치고 대대부로 돌아오는 길은 으스름 달밤에 철머구리 우는 소리까지 야단스럽고 구슬퍼서 마치 우련한 꿈속을 가는것만 같았다. 김학무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나더러 부축을 하라고서는 대고 나를 놀려주는것이였다.
“네 그 트로이목마 배속에는 복병이 하나도 안 들었지? 그럼 그게 무슨 소용있어? 예끼 순 얼간이 같으니라구!”
김학무는 또 잡힌 팔을 뿌리치는 시늉을 하며 뇌까렸다.
“이제 그 안아녀사가 ‘어광곡(渔光曲)’의 작자인건 너도 알지? 내 래일 만나면 ‘목마곡’을 쓰랄테다. …예끼 순 반병신 같으니라구.”
나는 묵묵히 발걸음만 옮겼다.
“하지만 상관 없어… 새옹화복(塞翁祸福) 어찌 알리. 화에는 복이 기대있다잖는가… 안 그래? 이 대역무도한 불령선인 같으니라구!”
그는 이 마지막 한마디는 일본말로 하였다. 그것은 일본인들이 조선혁명자들을 욕할 때 쓰는 관청어였다.
나는 기분이 한결 거뜬해졌다. 달빛은 여전히 우련하였다.
(다음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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