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살의 장희재로인은 귀주성 뢰산현 서강진 황리촌 사람이며 당지에서 유명인이다. 최초 글도 잘 모르던 장희재는 두차례나 6개월간의 문맹퇴치 야간학교에서 공부한후 문맹상태에서 벗어났다. 1985년 그가 취재하여 쓴 첫 기사 “영웅의 어머니를 위해 어려움을 해결하다”라는 문장이 귀주일보에 발표되였다. 신문보도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그는 자습을 통해 “농민기자”가 되였으며 32년간 7000여편(폭)의 보도를 발표했다. 장희재는 여러 매체의 통신원, 특약기자로 초빙되였으며 당지 민중으로부터 “짚신기자”라고 불리운다. 장희재는 기사의 진실성에 대해 아주 높이 요구하며 자신에게 “현장에 깊이 들어와보지 않으면 기사를 쓰지 않는다”는 철같은 규정을 정했다.
사진은 11월 7일, 장희재로인이 카메라를 목에 걸고 취재에 길에 나선 모습이다(중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