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20)
2016년 05월 17일 13:48【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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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감껍질
근 반년 동안이나 갈라졌던 두 친구가 참신한 환경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였으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 나는 반가운 나머지에 태항산의 명물인 감 몇개를 마련하여 “전쟁할 때” 문정일이를 초대하였다. 말하자면 환영연인 셈이다. “석상”에서 나는 선배의 자격으로(내가 그보다 오륙개월 먼저 입사하였으므로) 타이르기를
“여기서는 감을 먹을 때 껍질을 벗기잖고 먹는게 법이니 그리 알라구.”
그는 군말없이(입향순속이란 말의 뜻을 어렴풋이나마 알고있었으므로) 껍질채로 한입 베물더니 금시로 오만상을 찌프렸다.
“에퉤, 법이고 나발이고 다 모르겠다. 넨장!”
이렇게 뇌까리고 그는 호주머니에서 접칼을 꺼내더니 벗겨서는 안된다는 감껍질을 제멋대로 벗기기 시작하였다.
연회가 끝난 뒤에 즉 감을 다 먹고나서 문정일이는 군복의 자락을 떠들고 허리에 찬 권총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보였다. 전에 그가 차던것과는 달리 전연 생소한것이였으나 나는 짐짓 시치미를 따고 례사롭게 물었다.
“그것도 또 언제 칼집처럼 빈껍데기가 아니야?”
“무슨 빈껍데기?…”
“속에 탄창이 없는…”
례사로운 어투로 내가 주석을 달았다.
문정일이는 제잡담하고 권총을 빼서 내 손아귀에 척 쥐여주었다.
“보고 말해. 눈을 비비고 똑똑히 보고 말해.”
틀림없는 신품 콜트. 검푸른 빛이 섬섬했다.
“훔친거지?”
여전히 례사로운 어투로 내가 물었다.
문정일이는 업신여기는 태도로 입술을 비쭉하였다.
“그럼 협잡을 한거로구나!”
내가 단정을 내렸다.
“맹추 같으니! 남도 다 저 같은줄 알고… 뭐나 더럽게만 해석한단 말이야.”
문정일이는 분개해서 여지없이 나를 타박하였다.
“품격이 저렬하기가 똑 뭐 같은게…”
해도 태항산의 맑은 추색은 의연히 매혹적이였다. 그에게 있어서 또 나에게 있어서 그리고 모든 전우들에게 있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