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26)
2016년 05월 25일 14:58【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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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져죽은건 아니겠지?”
누군가가 이렇게 한마디 비꼬았다.
“기운이 뻗쳐서 마라손경주를 하는게지.”
“배때기가 고프면 어련히 찾아오잖을라구.”
허나 황기봉이는 한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고 또 두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강뚝에 서서 배를 불러야 할 사람의 그림자는 종시 나타나지를 않았다. 의혹이 차차로 짙어가는중에 한낮때가 다되여서 우리는 마침내 긴급회의를 열고 사태를 분석하고 또 대응책을 강구하였다. 그 결과 황기봉이는 배반도주를 한게 틀림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는데 그 론거인즉 다음과 같았다.
첫째, 돈을 쓰지 않고 꽁꽁 묶어둔것은 도망칠 로자를 장만한거였음. 둘째, 지도연구에 골몰한것은 도망칠 로선을 선정하느라고 한것임. 셋째, 권총을 속에다 찬것은 도망치는데 편리케 하자는것이였음.(군인이 단독으로 려행을 할 때는 려행증명이 없으면 무기를 휴대하지 못하므로)
이상과 같은 분석을 거쳐 진상이 명확해지자 우리는 아연실색하여 개개 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우리는 모두다 경각성이 발뒤꿈치같이 무딘 우경기회주의자들이였다! 련일 가지가지의 수상한 거동을 눈으로 보면서도 빈정댈줄만 알았지 누구 하나 랭정히 분석해볼 생각은 안했으니까! 황기봉이가 배반도주를 한것은 왕정위의 남경괴뢰정부가 성립되기보다도 두서너날 앞서서였다. 하여 그때부터 우리의 사전에는 새로운 단어 하나가 더 늘었다. “배반도주”라는 단어가.
우리는 즉각 추격대를 무었는데 그 성원은 왕통, 로천용(로철룡), 리동린 및 김학철로서 령솔자는 왕통이였다. 그리고 지대장의 명령으로 탈주자가 “항거하면 즉시 사살”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급히 배를 강안에 갖다대고 하륙을 하였다. 얼마 안 가서 지나가는 군용트럭 한대를 만나 편승하고 주주로 직행하였다. 주주는 세갈래의 철길이 교차를 하는 교통요충이다. 급기야 주주에를 당도해보니 정거장부근은 온통 폭탄구뎅이투성이로 흡사 망원경으로 관측하는 달의 표면과도 같았다. 구뎅이가 큰것은 직경이 십여메터에 깊이가 오륙메터씩이나 되는데 바닥에는 물이 충충 괴여있었다.
주주에서 우리는 주둔군을 찾아가고 공안국을 찾아가고 또 지방행정기관을 찾아가서 수소문을 해보았으나 다 허사였다. 하여 이튿날은 기차로 강서방면에 발을 뻗기로 하였다. 한데 워낙도 시원치 않은 증기기관차가 때는것까지 렬등석탄이라서 달리는 속도가 형편없이 느릴뿐아니라 도무지 고개길을 오르지 못하여 올라가다는 뒤로 미끄럼질을 치고 또 올라가다는 뒤로 미끄럼질을 치고 하였다. 나는 속에서 불이 나는것을 겨우 참았다. 꼴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다.
굼벵이렬차가 천신만고로 례릉역에 당도하였을 때는 우리는 모두 신심을 잃었었다. 잔디밭에서 바늘을 줏지, 어디 가서 붙든단 말이. 우리 네 사람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여버렸다.
례릉성밖에서의 일이다. 나는 속에 쌓인 울분을 풀 길이 없어 잽싸게 권총을 빼서 황기봉이의 배반도주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시꺼먼 도둑고양이 한마리를 쏘아죽였다. 그 앙칼스러운 꼴이 공연히 비위에 거슬려서였다. 나의 그러한 돌연적인 거동을 보고도 동행하는 친구들은 그저 덤덤히 서있기만 하였다. 그들의 속도 역시 나처럼 우울하고 불통쾌하였던것이다.
그후에 황기봉이가 어떻게 되였는지—우리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