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26)
2016년 05월 25일 14:58【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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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도주
1938년 늦은가을 장개석의 지랄 같은 명령으로 호남성의 수부 장사시가 불바다속에 잠겼을 때의 일이다. 평강전선에서 철퇴를 한 조선의용대 제1지대 전원은 그 불구뎅이속에 숙영을 할 재간이 없어서(무더기로 날리는 재때문에 통 눈을 뜰수가 없었다.) 성을 끼고 돌아서 칠리포(七里铺)라는 주막거리에 가 숙영을 하였다.
한주일 가량 지나서 우리는 다시 형산에서 백석실이 범선을 타고 재더미로 화해버린 장사로 내려왔다. 소상강의 가을경치는 천하으뜸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길손들의 간장을 녹여주었다.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을 하는 다른 한척의 배에는 곽말약청장 휘하의 항적연극대(抗敌演剧队) 제8대인가 몇대인가가 타고들 있었다. 우리는 모두 정식으로 군사훈련을 받은 군인들이므로 행군하나 숙영하나 질서가 정연하였지만 그 연극대 친구들은 그렇지가 못하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뒤죽박죽이였다. 식사를 하겠는데 식사도구들도 마련이 되여있지를 않아서 쑥스러운대로 우리 배에다 손을 내밀어야 할 지경이였다.
식사를 마친 뒤에 그들은 빌어쓴 식사도구들을 말끔히 씻고 부셔서 잘 썼다는 인사의 말과 함께 돌려왔다. 우리의 내부규정에는 “행군시에는 식사도구를 각자가 보관함”으로 되여있었다. 하여 우리는 그 일괄봉환을 한 식사도구들중에서 제각기 제것을 찾아가질판이였다. 한데 우리의 식사도구를 빌어쓴 그 연극대에는 하늘에서 금시 날아내려온 천사같이 예쁘게 생긴 젊은 녀배우 하나가 있었다. 방명은 들어모시지 못했어도 그 아릿다운 용모야 총각, 로총각들의 주목의 초점으로 되지 않을수 없다. 그런 참에 장난군 하나가, 찍어서 말하면 엽홍덕이가 찾아든 제 공기와 저가락에다 우습강스럽게 찍찍 소리를 내여 입을 맞추며 성명하기를
“바로 내 이걸로 그 아가씨가 밥을 먹었다나!”
한즉
“허튼수작!”
하고 리명선이가 대번에 반박을 가하였다.
“내걸로 먹는걸 내 이 눈으로 봤는데!”
이것을 계기로 숱한 짝사랑군들이 너도나도 각자의 독점권을 주장해나섰다. 다들 제걸로 먹었다는것이다. 그러니 그 녀자는 제게라는것이다. 떡 줄 놈은 아무 말도 없는데 김치국부터 마셔도 유분수지!
이러한 시기에 우리 대오에 생김생김도 그렇고 학식, 교양도 그렇고 별로 두드러진데가 없는 황기봉이라는 작자 하나가 있었다. 그도 남처럼 술도 잘 마시고 또 놀기도 잘하는 보통인간이였다. 한데 이 친구가 갑자기 바른길에 들어서서 성인군자가 될 결심을 하였는지 남하고 휩쓸리지 않고 외톨로 뼈지기 시작하였다. 급료를 타도 뭍에 올라가 한잔 할 생각을 아니하고 혼자 오도카니 배에만 머물러있었다. 그리고 로전으로 된 선실지붕우에다 군용지도를 펼쳐놓고 종일 무슨 연구에 골몰하였다. 그러니 자연 친구들의 말밥에 오를 밖에.
“어째, 갑자기 구두쇠가 돼서 한밑천 잡을 생각인가?”
“리태백이하고는 인제 그만 손을 끊을 작정이야?”
“저리들 물러서라구. 남은 지금 참모총장이 될 준비를 하는데!”
“다들 모르는 소리다. ‘전략개론’을 집필하는중이다!”
아무리 놀려주어도 황기봉이는 그저 싱글싱글 웃기만 하였다. 모두 못 들은체 지도만 파고드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