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21)
2016년 05월 18일 15:02【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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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모집
최채가 조선의용군에 참군하기전의 일이다. 당시 그는 남경 어느 영화촬영소에서 사업하고있었다. 한번은 배우를 모집하느라고 응모자들에게 시험을 보이는데 그도 심사원석의 말석에 끼이게 되였다.
응모자들의 대부분이라느니보다는 절대다수가 실망의 락방을 하기 마련인 응모시험인지라 푸른 꿈을 안은 젊은 남녀들은 모두다 가슴이 달랑달랑하는 판이였다. 심사원들이 죽 늘어앉아 지켜보는 앞에서 즉흥적인 연기를 피로한다는것은 이만저만한 난사가 아니였다. 한데 그날 오후의 시험이 거의 종장에 이르렀을 때 끝으로 서너번째로 불려들어온 스무나문살 난 사나이 하나가 심사원들에게 선을 보이게 되였다. 그는 인물도 잘났거니와 체격도 름름하여 겉보기에는 별로 나무랄데가 없는상싶었다. 그 지원서에 따르면 그는 “호철명, 남, 22세, 료녕성 안동시태생, 중앙대학 학생, 미혼”이였다.
주심원은 의전례하여 그에게도 얼굴을 쳐들어봐라, 고개를 숙여봐라, 외로 돌아서라, 뒤로 돌아서라, 앞으로 돌아서라… 련이어 분부를 내리는데 그 태연하고 침착한 태도는 흡사 마사회(马事会)의 리사가 순혈종의 경주마를 감정하는것과도 같았다. 연후에 그는 좌우를 돌아보며 눈짓으로 여러 심사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다들(최채까지를 포괄하여) 고개를 끄덕여서 합격임을 표시하였다. —제1심 즉 선천관(先天关)은 무사히 통과. 다음은 제2심 즉 후천관이다. 주심원이 물었다.
“숱한 사람앞에서 누가 까닭없이 당신을 모욕했다고 가정합시다. 그런 경우에 부닥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소? 성을 내겠소, 안 내겠소?”
“안 낼리 있습니까?”
호씨의 대답이다.
“그럼 그 성이 난 모양을 거기서 한번 형상화해보시오.”
조단(赵丹) 제2세가 되여보려는 야망에 불타는 호씨는 언하에 대뜸 눈을 부라리며 손에 닿는 걸상을 집어들어 후려때릴 태세를 갖추었다. 그 맹렬한 기세에 놀라서 심사원들은 모두 눈들이 휘둥그래졌다. 그러나 곧 깨닫고 모두들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주심원은 입이 쓴듯이 손을 홰홰 내저으며
“됐소, 됐소! 인제 그만하고… 물러가우.”
하고는 락방한 조단 제2세가 문밖으로 채 사라지기도전에
“밥통 같은게, 그 꼴에 또 배우가 돼보겠다구? 꿈은 잘 꾼다!”
이렇게 뇌까리고 혀를 쯧쯧 찼다.
허나 거기 늘어앉았던 여러 심사원들중에서 최채 한 사람외에는 아무도 그 푸른 꿈이 깨여진 불합격자가 시쁘둥해서 나가며 투덜거리는 “젠장할!” 소리는 알아듣지를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조선말이였기때문에.
오직 말석에 앉았던 최채만이 놀라서 속으로 (어, 그 작자 알고보니 우리 동포였구나!)고 괴이쩍게 생각했다. 조선에는 호씨성이 없는 까닭에 그는 애당초에 그 응모자의 국적문제를 념두에 두지도 않았던것이다.
그로부터 여름과 겨울이 다섯번 바뀌였다.
최채는 조선의용대에 침군하여 해방구로 가려고 제1, 제3 혼성지대를 따라 락양으로 왔다. 1941년 우수, 경칩 무렵의 일이다.
그는 락양에서 많은 초면의 전우들—제2지대 각 분대의 성원들과 사귀게 되였다. 한데 그중에 어디서 꼭 본적이 있는것 같은 얼굴이 하나 있었다. 해도 언제 어디서 보았는지는 전연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그러던것이 밤에 자리에 누워서 소등을 한 뒤에 피뜩 머리에 떠올랐다. (어, 그렇지! 촬영소에서 걸상을 둘러메치던 그 작자였구나!)
몇달이 또 지나서 각 지대, 분대의 성원들이 거지반 다 태항산으로 들어온 뒤에 하루는
“나를 모르시겠소? 우리는 구면인데요…”
하고 최채가 웃으며 호철명이에게 말을 건넨즉
“그렇던가요? 난 생각이 잘 나잖는데… 어디서?…”
하고 호철명이는 고개를 비틀었다.
“영화촬영소에서…”
“어, 그럼 동무도 그때…”
“아니, 나는 그때 심사원석 맨 끄트머리에 앉아있었는데… 동무가 나가면서 우리 말로 투덜거리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알았었지요.”
“어, 그랬던가!”
새로 사귄 두 친구—구면친구는 새삼스레 마주보며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일찌기 신사군에서 중대장을 지낸바 있고 또 후에는 조선의용대 중공지하당조직의 서기로 사업을 한 호철명이의 무덤은 지금도 태항산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가 충청도사람인것은 알지만 본명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