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해란강아, 말하라!》(1)
2016년 11월 17일 14:50【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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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 고충
아버지의 무리한 고집을 저주하며、자기의 난처한 립장을 한탄하며 달삼이는、목적도 없이 영수네 집 울타리를 달 빛이 지우는 제 그림자를 밟으며 두 바퀴나 돌고 나서야 겨우、그러나 풀은 죽을대로 다 죽어 가지고 그 집 방문 고리에 손을 대였다。
듣지 않던 사람의 낮은 음성이 안에서 들리였다。주인에게 무엇을-돈 벌이 하던 이야기를?-그 목소리는 하는 모양이였다。
모르고 집어 들었던 뜨거운 부젓가락을 놓아버리기나 하듯 달삼이는、싸늘한 문 고리에서 걸었던 손을 얼른 떼고는 한 발자국 주춤 뒤로 물러 섰다。들어 갈 용기가 없어진 것이다。
「아구、왜、오라버니、안 들어 가구 거기 서 계시우?」마침 우물에 갔다가 동이에서 흘러 내리는 물을 한 손으로 훑어 내며 돌아 오던 영옥이가、뒤에서 발견하고 이렇게 소리 하였다。그리고는 부엌 문 앞 토마루에 올라 서서 머리에 인 동이 높이 보다 낮은 문을 들어 가려고 약간 무릎을 구부리어 자세를 낮추며、안에다 대고 이야기에 정신이 팔리여 밖에서 되여지는 일을 캄캄히 모르고 있는 제 오빠를 일깨웠다。「에그、밖에 누가 온 것두 모르구!」
「어? 달삼이 아닌가! 어서 들어 오라구、회녕서 우리 외숙이 오셨어……」
친구가 소개하는 대로 두만강 건너에서 온 나그네와 초면의 인사를 끝내고 나서 달삼이는、자기의 침입으로 인하여 깨여진 숙질 간의 단란한 분위기를 수습하려고 련성 이야기를 다시 계속하라고 권하였으나、자기의 억지로 지어서도 쾌활할 수 없는 침울한 기분이 그것을 방해하였다。
영수가 제 그 탄력 있어 보이는、싯꺼먼 눈섶의 한 쪽 끝을 치여 들며、입 가장자리에서는 채 사그라지지 않은、웃음 같기도 하고 또 안 같기도 한 그런 것을 띄운채 설명하였다。
「지금 우리 아저씨가 동척 회사에다 땅을 떼우구 철로판에 돈 벌일 갔다가 봉변 당허던 이야길 듣는 참인데……그기 너무두 어처구니가 없어서 쓴 웃음을 웃는 길이라니……허허、참!」그리고는 제 외삼촌 쪽을 보고、「그러니 결국은 아저씨네두?……」
영수의 외삼촌은 한 달 어간에 장사를 두 번이나 치룬 사람 같이 얼굴 빛이 침침하여지며、말 대신에 고개를 끄덕이여 거기에 대답하였다。
묻지 않아도 그 뜻은、자기네도 이 어설픈 간도 땅으로 이사 들어 와야겠다는 것이였다。그리고 거기에는 또、「조카、자네를 의지해야지、이전 별 도리 없네。」하는 뜻도 포함되여 있었다。-나이 삼십이 다 되도록 장가도 들지 못 한、소 한 짝 제 것을 매지 못 한 그 조카의 살림은 또 얼마나 굵은 뿌럭지가 이 땅에 박힌 것이라고!
달삼이는 자기가 점점 더 입을 버리기 어려워지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영수의 구레나릇 꺼먹꺼먹한 뺨과 우뚝히 날 선 코로 균형 잡힌 옆 얼굴을 거물거리는 삼댓 불(삼 대에 뜨물 가라 앉힌 것을 발라서 말리여、그것을 등화로 당시 농촌들에서는 사용하였다)빛에 훔쳐 보기나 하듯 보고는、거기에서 예기한바 이상의 심각한 무엇을 발견하고는、크게 자기의 부당한 아버지에의 굴복을 후회하였다。
그는 자기가 지금、무거운 짐을 지고 일어서려는 친구의 손에서 그가 힘으로 믿고 기대는 유일한 지곗 작시미를 빼앗는 역할을 놀려 이 집에를 왔고나!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워 났다。-영수는 그러한、제 등 뒤에 닥드린 또 하나의 재난은 아지 조차 못 하면서도 벌써 저렇게 힘에 겨워 하지 않는가!
이 때、영수는 제 앞에 앉아 있는、시든 대추 처럼 쪼글아져서 초라한 외삼촌을 련민의 정이 가득한 눈으로 보고、그의 젊고 날파람 있던 왕년을 생각하고는 저절로 나오려는 한숨을 겨우 억제하였다。
그리고는 발 바닥 두 장 마음 놓고 붙일 제 땅을 가지지 못 하면서 그래도 제 나라 땅이라고 안타까웁게 떠나기 싫어서、그 서툰 철로 부설 공사에 맨 주먹으로 뛰여 들어가 붙어 보려다가-꿈 같은、어리석은 생각이였지、곡괭이 한 자루로 그래 어떻게 여섯 식구를 먹여 살릴 수 있어! -한 겨울 고생만 죽도록 하고 결국에는、제 누의와 매부가 뼈를 묻은 이 땅으로-그들이 숨 떨어지는 그 날까지、「금년 농사만 잘 되문 명년엔 꼭 고향엘 나가야지! 조선엘 나가 살아야지!」하고 해 마다 벼르면서도 종내 나가지 못 하고 그 고난의 일생을 맞춘 이 간도、삭풍 거친 땅으로-이주할 계획을 세우고야 만、그리고 그것을 자기와 상의하여 보려고 온 외삼촌을 그는 어떻게 격려할 것인가를 생각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영수 오랍 누의는 나종 돌아 가신 어머니를 여인지도 벌써 사오 년이지만、어려서부터 받아 온 그들 부모네의 영향으로 줄곧 해 마다、「명년엔 나간다! 명년엔 나간다!」를 외이느라고 언제나 궁둥이가 반 쯤 떠 있어서、빤빤한 터전에 나무 한 그루 심으려 하지 않다가 작년에야 비로소 울타리 밑에 백양 나무 다섯 주와 배 나무 다섯 주를 떠다 심고、거기에 자기들도 뿌럭지를 박고 안착할 결심을 내리였다。
하나 그것은 결코 살림이 전 보다 나아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아니、그것은 도리어 해 마다 점점 더 못하여 갔다)、영수의 자라나는 지혜가 정치적 안계를 넓히면서 자기네 부모의 어리석음을 비판할 수 있는 정도에까지 도달한 때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