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23)
2016년 05월 20일 13:51【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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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행군을 하게 되였을 때 우리 몇몇 장난군들은 미리 짜고 대거리로 리대성이앞에 서기로 하였다. 그 결과 물도랑이 있어서 건너뛰는것은 더 말할것도 없거니와 아무것도 없는 펀펀한 마른 땅에서도 훌쩍훌쩍 건너뛰여서 하루밤사이에 무려 사오십번이나 건너뛰게 되였다. 우리는 대거리로 건너뛰지만 리대성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도거리로 맡아서 뛰였으니 어찌 고달프지 않았으랴.
날이 밝은 뒤에 우리는 숙영하는 농가에서 대충 아침밥들을 먹어치우고 죽들 누워서 잘 차비를 하였다. 리대성이도 내옆에 와 누웠는데 그는 그 긴 다리를 죽 뻗으며 혼자서 투덜거리기를
“별 망할 놈의 고장 다 봤지, 웬 놈의 물도랑이 그리도 많담!”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참을수 없어서 한쪽으로 돌아누우며 그만 웃음보를 터뜨렸다. 짬짜미한 친구들이 얼른 내게다 눈짓을 하였으나 이미 뒤늦었다. 리대성이가 순간에 눈치를 챈것이다. 그는 벌떡 일어나 앉아서 눈방울을 굴리며 불만을 내뿜는것이였다.
“어, 알고보니 늬들이 날 놀리느라고 한짓이였구나! 못된것들 같으니라구!”
하고는 그 큰 주먹으로 나를 한대 콱 쥐여박으며
“다 늬가 주동이 돼서 한노릇 앙이가!”
리대성이는 그번에 골탕을 먹은 뒤로는 아무도 믿지를 않았다. 다시는 그런 못된것들에게 속지 않으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하여 그는 또다시 밤에 행군을 하게 되였을 때 앞사람이야 물도랑을 뛰여건느거나말거나 아랑곳없이 례사걸음으로 걸었다. 한즉 다음 순간 그의 발목은 첨벙 물속에
“이키나, 이건 진짜였구나!”
그후 얼마 지나서 나는 우리 총탄에 맞아죽은 일본병정의 소지품을 뒤지다가 배낭속에서 일본 어느 제약회사의 “하리바”라는 상표가 붙은 정제(锭剂)어간유 한병을 뒤져내였다. 반병 착실히 남아있는것이였다.(리대성의 조카 리동호는 적병의 시체에서 피에 젖은 속옷까지 홀랑 벗겨내서 빨아입는 버릇이 있었지만 나는 께끄름해서 그런짓은 종래로 안하였다. 군화는 더러 벗겨서 신어보았지만.) 나는 리대성이를 전위해 찾아가서 그 전리품 어간유정을 넘겨주며
“이봐 꺽다리, 이걸로 그만 쓱싹해버리지.”
하고 그의 어깨를 툭 쳤다.
한즉 그는 금시로 입이 벌어져서
“별소릴 다하는구만. 쓱싹은 무슨… 내가 언제 골을 냈었남.”
하고 그 자그마한 선물—야맹증특효약을 받아넣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