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25)
2016년 05월 24일 13:35【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헌병놈은 반몸 돌아서서 공명운을 아래우로 한번 훑어보더니 못마땅한듯이 흥하고 코소리를 한번 내고 저벅저벅 걸어서 도로 저쪽으로 가버렸다. 그러는 동안에 영문 모르는 인력거군들은 생벼락을 맞을가봐 겁이 나서 슬금슬금 다 뺑소니를 쳐버렸었다. 하여 두 사람은 그물을 벗어난 고기들처럼 제각기 가방 하나씩을 들고 땅만 보며 부지런히 걸어서 역전광장을 벗어났다.
그날 밤 동성구역 어느 자그마한 려관방에서 한빙은 입이 닳도록 공명운이를 타일렀다.
“사유제도를 단꺼번에 소멸할수는 없단 말이요. 동무는 인간의 존엄을 존중한다지만서도 우리가 그 사람의 인력거를 타지 않으면 그 사람은 우선 먹고 살수가 없는건 어떻거구? 그래 어느게 더 비인도적이요?”
“인간이 하필 그런 비천한 일을 할게 뭡니까.”
하고 공명운은 조금도 구부러들지를 않았다.
“다른 할 일이 얼마든지 있는데…”
“다른 할 일 무슨 일? 은행지배인? 변호사? 총독?…”
공명운은 볼에다 밤을 물고 대꾸를 아니하였다.
“개혁을 하는데도 일정한 순서와 과정이 있는 법이야. 한걸음에 여러 계단을 뛰여건느다가는 가랭이만 찢어져. 비근한 실례를 들어서 동무도 달마다 리발소엘 가겠지. 가면 리발사가 머리를 깎아주고 면도질을 해주고 또 머리를 감겨주고 하겠지… 그럼 그건 인간의 존엄하고 상관이 없는건가? 하지만 우리가 만약 리발사의 존엄을 존중한답시고 리발소엘 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가족을 먹여살릴수가 없게 될것 아닌가. 그렇다면 어느게 더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는겐가? 어디 말을 좀 해보라구.”
공명운은 대꾸할 말이 없어서 고개를 다수굿하고 앉아서 애매한 성냥개비만 톡톡 분질렀다. 그러나 속으로는 (암만 그래도 난 인력거는 안 탈테니까. 한번 안 탄다면 안 타는게지. 죽어도 안 탈테니 어디 두고보지.) 하고 맹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