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25)
2016년 05월 24일 13:35【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한빙과 공명운은 북평에서 여러날을 묵새기며 수소문을 하였으나 종시 찾을 사람을 찾지 못하여 도로 천진으로 나왔다. 허나 거기서도 또 헛물을 켜게 되여 그들은 아주 단념을 하고 배에 올라서 상해로 남하하였다. 다행히도 그들은 상해 프랑스조계에서 초면의 동정자 하나를 만나게 되였다. 그 사람의 이름은 류일평이고 직업은 개업의였다. 류씨는 한, 공 두 사람에게 남경 중앙대학 기숙사로 김학무라는 조선학생을 찾아가면 모든것을 알게 될것이니 그리로 가라고 권고를 하였다. 그리고 덧붙여서 건의하기를
“요새 북정거장은 일본특무놈들의 기찰이 부쩍 심해졌으니 안전할성으로는 수로를 택하시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입은 양복들이 모두 순 조선식이라서 눈에 뜨이니 중국옷차림으로 변복들을 좀 하시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류일평씨는 맑스주의자는 아니였으나 민족적절개를 끝끝내 지킨 인격자이며 애국자였다.
한빙과 공명운은 류씨의 건의를 받아들여서 또다시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올라가기로 하였다.
“제가 나가서 변복할 옷들을 사올테니 그동안 선생님은 누워서 좀 쉬십시오.”
공명운이가 이렇게 말을 남기고 거리로 나간 뒤 한빙은 침대에 누워서 담배를 피웠다. “칼”표담배 두대를 막 다 피웠을 때 공명운이가 중국옷들을 한아름 사안고 신바람이 나서 들어왔다. 포장지를 펼쳐보니 남색고의적삼이 두벌이다. 두 사람은 난생처음 그런 헝겊으로 꼰 단추고가 달린 옷을 입어보는지라 서투르기가 짝이 없었다. 가까스로 다 꿰고걸고하고나서 서로 마주보니 가관의 절승경개라 한동안 허리들을 잡았다. 한빙은 키가 크지 않으므로 그럭저럭 면무식정도나 되였지만 공명운은 호리호리한 꺽다리인지라 소매는 짧고 가랭이는 깡동하여 흡사 밭에 서서 참새를 쫓는 허수아비와도 같았다. 허나 그건 그렇다손치고 문제는 한빙이
“한데 이 깃이 어째 이렇게 옆으로 났을가?”
하고 고개를 비튼것이다.
공명운이가 그 말을 듣고 다시 보니 아니나다를가 깃들이 모두 겨드랑이밑으로 났다. 해도 그는 아랑곳없이 제나름으로 해석을 하였다.
“그러기에 중국옷이라잖습니까. 중국옷은 본래 다 이런거예요. 입어나지 않아 서툴러서 그렇지… 입어나면 일없을겁니다.”
한빙은 의혹이 다 풀리지는 않았으나 공명운이가 하도 확신성있게 잘라 말하는 바람에 그만 눌려서 의문을 더 제기하지 않고 우물쭈물 뒤를 거두고말았다.